부러진 남십자성

Posted 2006. 10. 16. 17:27, Filed under: 꽃풀 이야기
흙흙흙.....
보름 전엔가 잘 가지 않는 먼 화원을 지나치다
한눈에 홀딱 반해서 들인 다육이...
이름도 몰랐는데 알고보니 남십자성이랜다.
이름처럼 예쁜 녀석을 일광욕시킨다고 베란다 창틀에 놓아두었더니
저녁때 동생이 와서 문 닫는다고 하다가 왕창 분질러 먹었다. ㅜ.ㅜ
다른 다육이들은 그런대로 사이트 이곳저곳에서 봤는데
이녀석은 잘 못보던 넘이라서 엄청 속상함....
남은 녀석도 휑뎅그렁하니 볼품없기는 매한가지... 꺼이꺼이

처참한 그날의 광경...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일단 모듬화분의 빈곳에 마구 찔러 심었는데 잘 자라줄지...???



이쪽 틈서리에도 찔러심었다. 세어보니 10동강이 났다..

Response : ,

해님을 사랑해~~

Posted 2006. 10. 12. 17:32, Filed under: 꽃풀 이야기

식물을 기르면서 날씨를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전에는 그저 비가 오면 귀찮거나
날씨가 흐리면 우울해지거나
청명하면 기분이 상쾌하다거나
매사가 나를 위한 날씨였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다 초록이들 생각이 먼저 난다.
며칠 내리 해가 안 보이고 날이 흐리면
"아아.. 오늘도 해가 안 나오네~" 하고 아쉬운 생각을 하게 된다.
전에는 아파트가 5층이라 오르내리기 편하다고 좋아했는데
요즘은 일찍 그늘이 져서 고층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하게 된다.
뭐 아예 마당 있는 단독이 좋겠지, 싶기도 하고.
넓은 마당에 연못도 파고 꽃밭도 가꾸면서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사실 해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책에서 '반그늘'에서 자란다고 하면 철썩같이 믿었다.
반그늘이란 완전 그늘이 아닌 어느 정도 빛이 있는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난 거실이 반그늘이라고 믿었고
거실에서 반그늘 성장 식물이라고 믿는 녀석들을 겨울부터 내내 길러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울 집 거실은 거의 그늘 수준이었다.
오히려 오전 해가 비치고 정오부터 그늘이 드는 베란다가 반그늘??
그 사실을 모르고 6개월간 내내 아무 변화가 없는 팔손이를 원망했고,
새순이 고개만 내밀고 자라지 않는 홍콩야자가 이상한 녀석이라고 말했다.

오전이나마 유일하게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울 집 베란다는
초록이들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이는 장소.
아마 녀석들도 탁 트인 창으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남의 집을 부러워할 듯... -_-;;

5월에 델꼬 온 홍콩이.. 꽤 풍성한 넘이었다



과습으로 앙상해진 홍콩이의 여름..내내 저랬다



9월 중순 베란다로 나간 홍콩이..10월 2일에 보니 새순이 제법 나고 있다



열흘쯤 지난 오늘 보니 새순이 부쩍 자랐다




2월에 와서 새 잎 한번 낸 적 없는 팔손이



베란다로 나간 지 2주만에 저리 새잎을 내고 있다



한 달이 좀 넘었다. 지금은 삼손이에서 완벽한 오손이로 승격!!



홍콩야자에 대한 책의 설명을 보면 반그늘에서도 자란다고 되어 있다.
팔손이에 대한 설명을 봐도 마찬가지다.
가끔 이런 설명 때문에 성장을 제대로 못하고 죽어가는 초록이가 생긴다.
해를 못 보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병들기 쉽다.
해가 없으니 물마름도 좋지 않아 과습도 빈번하다.
식물은 해를 사랑한다.
한여름의 직사광선은 잎을 태우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해가 보약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건 비단 사람만이 아닌 것이다.

Response : ,



<라디오스타>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 영화를 함께 볼 사람들을 찾느라 머릿속이 마구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다려왔던 영화.
그러나 아는 거라곤 오직 <왕의 남자> 감독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오로지 그 정보 하나에 모든 걸 걸고...  -_-;;

재밌는 영화와 마음을 두드리는 영화 중에서
제법 후자를 좋아할 만한 지인들을 꼬드겨 이 영화를 봤다.
세상 물정 모르는 올드스타의 행태를 보면서 혀를 차고
마치 철없는 남편의 뒷바라지에 여념없는 일편단심 같은 매니저의 모습에 혀를 차다가
마침내 미소짓고 눈물 흘렸다.
그 눈물은 슬픔 때문에 짭쪼름한 맛이 났고,
뭉클한 시려움 때문에 어딘지 시큼했고,
그러면서도 따스하게 젖어드는 그리움 때문에 달콤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을 스친 건 영화 속 인물들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복합적인 눈물과 웃음의 맛을 만들어내는 이 괴물같은 감독은 누구냐?"
"이 사람이 그 코믹영화 <황산벌> 만든 사람 맞아?
어째서 이런 감수성을 아는 사람이 그런 코믹영화부터 만든 걸까?"

그리고 가장 크게 느낀 건
"이 감독.. 산다는 게 뭔지 아네...."였다.

사실 삶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은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인지라
매순간 희와 비가 분명하다.
기쁜 순간이 있고, 슬픈 순간이 있다.
한참 웃는 순간이 있으면, 이어서 고난의 순간이 다가오며
마침내 감동적으로 이를 뛰어넘으며 부르짖는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인간의 승리에 마침내 감동하라~감동하라~"

그런데 <라디오스타>에는 기쁜 순간과 슬픈 순간이 특별히 따로 있지 않았다.
매장면마다 짜증날 법한 일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웃음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슬펐고,
또한 행복했다.
삶의 매순간 느끼는 감정이란
때론 행복이 50, 불안이 20, 짜증이 5, 인내가 10이거나
때론 슬픔이 55, 희망이 20, 그리움이 10, 의지가 5 등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빛난다는 걸 이 감독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나는 웃으면서 울었고, 슬프면서 행복했다.

산다는 건
항상 행복한 것도, 항상 불행한 것도 아니고,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처럼 이리저리 구르며 우리의 마음이 기울어질 뿐이다.
기뻐도 슬퍼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래도 분명 혼자가 아니기 때문일 거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야!라고 외치지만,
그래도 인생은 혼자 사는 게 또 아니다.

그래도 영화 속 사람들은 여전히 어렵다.
둘 사이의 우정을 지켜나가려면 현실 속의 처자가 김밥장사라도 나서야 한다.
우정과 사랑은 결코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우정을 선택하려면 사랑을 버려야 하고,
뜨거운 사랑을 선택하려면 결국 친구를 버려야 하는 게 현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감독은 사랑에 인색하다.
남자의 로망과 우정이 처자보다 중요하다는 걸 매영화마다 역설하고 있으니...


실제출연한 노브레인.. 노래 듣는 맛도 훌륭한 영화..



왜 이런 걸 스틸사진으로 했을까..엔딩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데..

Respons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