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1/23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709호


지난 10월 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구간에서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BC69~AD 4)를 키웠던 진한 6촌장의 사로육촌 중
고허촌의 유적이 대량 발굴되면서 이들의 정체 규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알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키워지다가
자력으로 만주지역에 고구려를 세우고,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은 알에서 태어난 지 반나절 만에 성인이 돼 보름 지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모든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사로육촌의 6촌장 손에 13년간 키워지고 나서 신라의 초대왕으로 추대된다.


진한 6촌장 인도 타밀 출신 추정

필자는 가야 초대 왕비 허왕후 및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설화 속에
언어적 유사성 및 해양교류 등을 추적한 결과,
이들이 인도 남부의 타밀 출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혁거세의 설화에 나오는 주요 명칭들이
당시 타밀어와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윷놀이와 제기 등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도 타밀어 명칭과 놀이 형태가 완전히 똑같다.
박혁거세의 대부 격인 6촌장이 타밀 출신이라 자신들의 언어와 풍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도 남부 및 스리랑카 북부 출신으로 토론토에 거주하는 20여 만 명의 타밀인들 가운데
타밀인협회 및 여성단체 관계자, 힌두교성직자, 교수, 교사 등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타밀어 사전 및 역사서 등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타밀어에서
 ‘자력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운 좋은 왕’ 또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왕’을 지칭하여
‘박히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히야거사이(Pakkiyakosai)’라고 불렀는데
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6촌장들이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박처럼 둥근 알에서 태어났다”하여 성은 ‘박(朴)’,
“세상을 밝게 한다”하여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라는 한자어 작명을 한 것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박’은 당시 타밀어와 우리말이 아주 똑같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수라이카이(Suraikai)라고 불리고 있다.

또 박혁거세에게 붙인 ‘왕’의 명칭 거서간(居西干)도
당시 타밀어 ‘거사간(kosagan)’과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아울러 6촌장들의 이름 또한 당시 타밀인들의 이름과 유사하다.
박혁거세 알을 처음으로 발견한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는
타밀어로 ‘훌륭한 지도자(Good Leader)’를 뜻하는 소벌두라이(Sobolthurai)와 거의 같다.
알천 양산촌의 알평은 아리야판(Aryappan)과,
자산 진지촌의 지백호는 치빠이코(Chippaiko)와,
무산 대수촌의 구례마는 구레마(Kurema)와,
금산 가리촌의 지타는 치타(Cheetha)와,
명활산 고야촌의 호진은 호친(Hochin)과 각각 일치한다.

이들의 출신에 대해 학계에선
“이곳(서라벌)에 오래 전부터 조선의 유민들이 내려와 여섯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쓰여 있는
여러 역사서의 내용과 유물 등을 분석하여
박혁거세 및 6촌장 모두를 북방유목민출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혁거세와 6촌 주민들이 북방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서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존재”라고만 전해오는 6촌장 만큼은
허왕후나 석탈해와 마찬가지로
당시 막강한 해상력으로 아시아 전체를 누비고 다니던 인도의 타밀 출신으로 추정된다.

둘째, 박혁거세의 탄생지 근처에 있는 우물 ‘나정’은
타밀어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을 뜻하는 ‘나중(nazung)’과 거의 일치한다.
타밀어의 나주쿠(nazukku)는
“땅을 파헤쳐 이랑이나 도랑을 만들다”(=make a shallow furrow)라는 뜻의 능동형 동사인데
그 수동형동사 ‘나중구(nazungku)’는
‘이랑이나 도랑이 만들어지다’ (=be ploughed with shallow furrows)라는 뜻이다.
여기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이라는 뜻의 명사 ‘나중(nazung)’이
바로 박혁거세의 우물 ‘나정’으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8월 문화재청은 깊은 도랑과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경주 시내 우물 나정을 발굴한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발굴팀은 현장 조사에서 확인된 나정의 정중앙 8각형 건물지(한 변 8m, 지름 약 20m) 주변에서
이 8각형 건물지보다 앞서 축조되었음이 분명한 도랑,
즉 구거 같은 대형 구상 유적을 확인했다.
이로써 박혁거세가 신화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로 자리매김된 것이라고 문화재청측은 설명했다.
 


알영 부인 이름도 타밀 이름과 유사

셋째, 박혁거세의 또 다른 이름인 ‘불구내’는
현재 타밀 나두주(州) 땅에 있던
당시 타밀인들의 촐라 왕국 바닷가 마을 ‘부르구나이(Purugunai)’와 거의 일치한다.
필자는 신라 4대 왕 석탈해의 고향이
동서양 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고대 국제도시 나가파티남(Nagapattinam)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도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부르구나이가 있다.
박혁거세의 후견인 6촌장들이 이곳을 출발, 동아시아를 향해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신들의 고향 이름을 박혁거세의 별명으로 붙여 막강한 영향력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부르구나이는 현재 벨란간니(Velankanni)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가톨릭 교회 ‘안네 벨란간니(Annai Velankanni)’가 들어서서 명소가 됐다.

넷째, 고구려의 주몽이나 가야의 김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나지만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박은 우리말과 당시 타밀어가 그 발음과 뜻에서 똑같다.
박은 현대 타밀어로는 수라이라이(Suraikai)라고 불린다.
박은 인도나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
인도에서 건너온 6촌장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 필수품 중 하나인 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타밀인들은 일년내내 무더운 날씨를 견디려고
박을 파낸 표주박 등으로 만든 물통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목을 축이곤 했다.
이 물통은 타밀어로 단니 쿠담(Thaneer Kudam)이라고 불리며
호리병박으로 만든 작은 물통은 수라이 쿠담(Surai Kudam),
호박으로 만든 큰 물통은 푸사니 쿠담(Pusani Kudam)이라고 칭한다.

다섯째, 신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서나벌’은
당시 산스크리트어 및 고대 타밀어로 황금을 뜻하는 ‘서나(Sona)’와,
벌판(field)을 의미하는 ‘벌’ 또는 ‘펄(Pol)’이 합쳐져
황금밭(Gold Field)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말에서 ‘벌’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인데
고대 타밀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아울러 ‘서라벌’도 ‘아름다운(nice)’을 뜻하는 ‘서라(Sora)’가 ‘벌(Pol)’과 합쳐져
‘아름다운 들판’을 뜻해 새 나라의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민속놀이 명칭도 거의 비슷

여섯째,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BC 53 ~?)부인은 아리영이라고도 불리는 데
타밀 여성 이름 아리얌(Ariyam)과 거의 일치한다.
아리얌은 아리야말라(Ariyamala)의 줄인 이름으로
기원전 타밀 왕국역사에 나오는 캇타바라얀(Kaththabarayan)왕의 부인 이름인데
이를 신라 초대 왕비 이름으로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계룡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알영부인이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는 내용도
인도 힌두교 신화에서 지혜와 총명의 여신(Goddess of Learning and Wisdom) 사라스와티(Saraswati)가
백조(swan)의 부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설화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결국 알영부인은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백성들에게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앙받았다는 것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 타밀인들이 사라스와티를 숭배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힌두교와 관련된 것들이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곧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한 바 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이진아시왕의 별칭)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김수로왕의 별칭) 두 사람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힌두교와 관련 있다.
힌두교의 주요신 시바(Shiva), 부인 파르바티(Parvati), 두 아들 가네쉬(Ganesh)와 무루간(Murugan)을
각각 고대 타밀어로
‘이비가지(Ibigaji)’ ‘정견(Chongyon)’ ‘뇌질주일(Noejil Juil)’ ‘뇌질청예(Nojil Chongye)’라고 불렀다.
이 구절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개정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곱째, 박혁거세왕은 재임 17년(기원전 40년)에 알영부인을 대동,
6부를 순시하며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농토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였다(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고 전하고 있다.
즉, 삼과 누에로부터 얻은 실로 길쌈해서 삼베옷과 비단옷 등을 해입었고
벼농사를 비롯한 곡식생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다.
또 제3대 유리왕은 추석 때 길쌈놀이를 실시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우리말의 비단, 삼, 길쌈, 벼, 풀 등은 고대 타밀어와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경악할 정도로 너무나 똑같은 농경사회의 주요 명칭들을 다음의 비교표로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 우리가 즐기는 윷놀이, 제기놀이, 쥐불놀이, 팽이놀이 등 민속놀이도
당시 타밀어로 각각 ‘윷노리(Yuddh, Yuth Nori)’ ‘제기노리(Jegi Nori)’ ‘추불 노리(Chupul Nori)’ ‘ 팡이 노리(Pamgi Nori)’로 불리며 그 형태도 완전히 똑같다.
‘놀이’는 고대 타밀어로 ‘노리(Noori), 또는 노루(Nooru)’로 불렸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빌햐야들(Vilaiyattu)’로 불린다.
다음의 비교표를 보면 타밀인들이 피부색만 다를 뿐이지 바로 이웃 사람으로 느껴진다.


현대 타밀어에서도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 “난(나), 니(니)”
”니, 인거 바!(니, 이거 봐!)”
”니, 인거 와!(니, 이리 와!)”
”난, 우람(난, 우람하다)”
”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
”난, 비루뿜(난, 빌다)”
”바나깜(반갑다)”
"난, 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
”모땅(몽땅)”
”빨(이빨), 무크(코), 깐(눈깔), 코풀(배꼽), 궁디(궁덩이)”등
거의 똑같은 단어와 어구들이 적지 않다.

이는 박혁거세 부부의 대부격인 6촌장들이 인도 타밀의 것을 한반도에 소개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 이전에 중국대륙을 통해 벼나 보리농사가 이미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농사 관련용어 및 민속놀이 등은
타밀출신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우리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타밀인들이 한반도까지 도달했던 또 다른 증거는
박혁거세와 석탈해 등 신라 초기의 왕들의 난생설과
경주와 포항 등 신라지역에서 대거 발견되는 고인돌 등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인 한양대의 김병모 교수에 따르면
벼농사, 난생신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 등의 지리적 분포가
인도-동남아시아-한반도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인도 문화의 영향을 시사했다.
김교수는 또 “신라주민은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중국 진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그리고 고구려에게 멸망한 낙랑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필자는 토착 농경인들을 이끌던 6촌장들이 타밀출신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인도 남부 해안지대의 타밀인들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서쪽으론 로마제국까지,
동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까지 활발하게 진출하다가
대만 북쪽으로 흐르는 흑조 난류를 타고 북상, 급기야 한반도까지 도달한 것이다.
타밀인들은 사로 6촌 가운데 동해안과 접한 금산가리촌에 도착한 뒤
내륙으로 들어가 경주의 사로 6촌을 개척,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타가 통치한 영일만 부근 금산가리촌은
현재 동해안과 접한 경주시 감포읍과 양남면, 양북면 등 3개 지역 모두를 포함했다.

또, 필자가 인도 타밀 출신으로 간주하는 신라 제4대왕 석탈해의 알이 담긴 궤짝도
동해를 표류하다가 동해안의 아진포에 당도하는데
이곳이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라고 석씨전국대종회가 밝히고 있어
이래 저래 금산가리촌은 당시 인도 타밀인들의 도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경주 덕천리 유적 발굴작업에서 출토된 목관묘 11기와
청동기 항아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문토기,
그리고 매장된 사람의 지위가 높음을 알려주는 오리모양 토기 11개와 말과 호랑이 모양의 허리띠 고리 등이
당시 인도 타밀의 역사적 유물들과 비교, 추적해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6촌장들은 물론 박혁거세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신라 제3대 유리왕은 서기 32년 육촌을 육부로 개편하고
각 부에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6촌의 각 촌장들은 자동적으로 각 성의 시조가 된다.
소벌도리는 최(崔)씨의,
 알평은 경주 이(李)씨의,
구례마는 손(孫)씨의,
지백호는 정(鄭)씨의,
지타는 배(裵)씨의,
호진은 설(薛)씨의 조상이 된다.



김정남〈타밀학회장·캐나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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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 저 잔
매일매일 옷 갈아입듯
기분에 따라 잔을 골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여인네가
티팟이라고 예외일쏘냐... -_-;

더군다나 일제 주방용품이나 캐릭터디자인 회사에서 나온 티팟이나 잔들은
로얄 알버트니 웨지우드니
노리다케니 로얄 코펜하겐이니 하는
유명한 도자기 회사의 제품에 비해서 가격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쉽게 지갑을 열게 하는 또다른 함정이 존재한다.
(함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  -_-;  )
 
그리고 명품 도자기들이 극상의 기품과 우아미를 지녔다면
요 녀석들은 아기자기한 귀여움과
실생활에 쓰기 좋은 친근한 얼굴로 나를 유혹한다.

암튼 오늘 올리는 녀석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 사진 찍은 김에 얼굴 비추신 요녀석.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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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들여서 가끔 애용하는 이쁜이 티팟.
이름은 신지 가토의 블루 티팟.
블루와 화이트의 경쾌한 대비에
이쁘고 부드러운 초콜릿색 레터링이 따뜻하고 정겨워서 들이고 말았던 넘이다.
꼭 초콜릿으로 흘려 쓴 것 같다.
근데 블루 티팟이라기보다는
'본 아페티' 티팟이라고 해야 맞지 않나??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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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역시 초콜릿색으로 티잔과 접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손으로 막 그린 듯 정감 있는 그림들~

게다가 이 티팟은
마치 카렐이나 AT의 제품처럼
주둥이로 통하는 부분에 구멍을 송송 뚫어서
일단 스트레이너 기능을 갖추고 있고,
기울일 때 뚜껑이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뚜껑에 살짝 걸림부분이 있다.
디자인에만 승부하는 게 아니라 나름 티팟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한 냄새가 폴폴 난다. ^^

화려하고 멋들어진 티팟도 좋지만
어쩐지 그런 티팟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귀부인 같은 느낌..
(실제로 다가가기 어려운 가격을 지니고 있고.. -_-;; )
요런 녀석들은 친근하고 귀엽고 소박해서 부담이 없다.
쓰면서 둥근 배를 슬슬 만져도 보고 말이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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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게이트 티피아쌈을 스트레이트로~

Posted 2008. 1. 14. 16:15, Filed under: Happy Teatime
매일매일 먹고 싶어지는 요상한 마력의
티피아쌈 밀크티에 대한 식욕을 억제하고
오늘은 스트레이트티에 도전해보았다.

사실 속만 편했어도 밀크티를 마셨을 것인데
점심을 올케가 사갖고 온 빵으로 때웠더니
밀크티를 마셨다간 속이 더부룩할 것만 같아서... ^^


아무래도 내 입맛이 강한 차는 썩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첨부터 너무 강하게 우렸다가 정 떨어질까 봐
물은 350cc 정도 넣고
찻잎은 찻숟갈로 한 스푼 넣었다.

이후 허둥지둥 허둥지둥... -_-;
모래시계가 잇으면 뭐하나...
앗, 스트레이너를 깜박했다,
앗, 빵 뎁혀야지~
이것저것 챙기다가 너끈히 3분을 넘겨버리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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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오늘의 상차람~
(저 먹다 만 빵 쪼가리 좀 봐.. 궁상스럽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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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을 붓는 순간부터 예의 심상치 않은 향기를 풍기던 아쌈~
역시 그 향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아쌈은 강한 차라는데
헤로게이트의 티피아쌈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내 코끝에 와닿는 향기는 부드럽고 살짝 달콤하고 그러면서도 싱그러운~~~ (역시 킁킁)

연하게 우려서인지 색도 비교적 밝은 편.
머그잔이라 깊이가 있는데도 굉장히 경쾌한 감색~

이넘 본연의 맛이 궁금해서 우선 무설탕으로 맛을 봤다.
역시 그다지 강하지 않다.
향도 맛도 어딘가 위타드의 기문이나
아마드의 잉글리시 애프터눈을 살짝 닮은 듯 은은한데,
아니????
목에 넘기는 순간 목끝에 시원한듯 매콤한듯 자극이 느껴지는 것이다!!
밀크티를 마실 때 상쾌하다고 느꼈던 맛의 정체가 바로 이 녀석이다~
홍홍홍!!
이 자극감은 혀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분명 목에서 넘겨진다. 캬캬캬
재밌는 차네~~

본격적으로 마실 때엔 살짝 설탕을 가미해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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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들이가 되어준 빵...
(아, 점심에 이어 또 빵이네.. ㅠ.ㅠ)
뜯어 먹다 말아서 모양은 저래도
동생이 그저께 밤에 사들고 왔을 때엔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로티보이의 빵이라는데
바삭하면서도 입에 붙는 맛이 식감도 일품,
거북하지 않은 커피향과 버터향이 맛도 일품이었다.
 
근데 하루가 넘게 지나면서
뭐랄까..
버터가 눅눅하게 빵에 배어서 그때 그 식감과 맛이 아니네....
뭐 그래도 워낙 버터빵을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지만서두..ㅎㅎㅎ
단, 저 빵과 아쌈의 궁합은 별로다.
서로가 서로의 맛을 죽여서 밍밍하게 만들었다.
역시 커피랑 먹었어야 했는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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