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 서삼릉을 나와서
Posted 2008. 5. 4. 17:07, Filed under: 끄적끄적 후기서삼릉을 나와서 이날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경마 교육원으로 갔다.
사실 아니 들를 수가 없는게
서삼릉 입구 바로 옆에 경마 교육원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목장에 나와서 운동하는 말도 볼 수 있다길래
두근두근 기대하며 들어갔다.
경마 교육원 입구의 현판.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동물들의 신세가 다 그렇지만,
경마용 말들의 신세 역시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나으려나???
더이상 경마에 적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까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종마로 대접받으면 운이 좋은 거고,
아니면 촬영현장에서 뛰어야 하겠지. (이때 많은 말들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한다. ㅠ.ㅠ)
입구를 들어서면 쭉 이어진 산책로가 반긴다.
삼삼오오 정답게 걸어가는 아주머니들. ^^
좀 걷다보니 좌우로 드넓은 목장들이 펼쳐졌다.
와웅~
제주도 목장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다... >0<
좀더 가까이....
하지만 어디에도 말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
어릴 때부터 기르기를 소망했던 동물이 둘인데,
그중 하난 고양이였고, 또 하난 말이었다. ^^;
말은 관능적이고 아름답고,
역동적이고,
그리고... 뭣보다 자유롭다.
아마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본능을 이해하는 사람은
말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과 영혼을 교감할 수 있다면.....(흠..또 옆길)
산책로 밑으로 나무 아래 벤치들이 늘어서 있었다.
더이상 볼 것이 없으니
피곤한 다리도 쉴 겸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벤치 뒤로 보이는 철쭉꽃 무리.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올려다보니
연둣빛 나뭇잎이 우거져 눈이 시원했다.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고
평소에 원하던 휴식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앞에 쭉 뻗어 있는 철책.
날이 제법 어두워지고 있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교육장 밖으로 나오니
건너편에 보성 녹차밭이 연상될 만큼 싱그런 초지가 쫘악 펼쳐져 있었다.
눈이 시원지는 그 빛깔.
탄성을 질러가며 과연 이 색깔이 제대로 나올까 의심하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실제에 훨씬 못 미친다.
특히 화면 반경이 너무 좁아서
눈으로 보는 탁 트인 느낌이 전달되질 않는 듯)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왔다.
오던 길을 다시 걸을 엄두는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삼송역으로 갔다.
4. 추억을 찾아서
오는 길에 친구가 모교가 보고 싶다고 했다.
아침에 버스에서 보니 모교 건물이 안 보이더라며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설마...." 했다.
서울 중앙에 있던 오래된 학교들이 그렇듯이
우리 학교도 예전에 부지를 팔고 도심 밖으로 옮겨갔다.
다행히 본관 건물은 일제시대 때 지어진 건물이라
나라에서 보존건물로 지정해서 예전에도 본관 건물만은 분명 본 적이 있었다.
* * *
안국동에 위치했던 그 자리.
3호선 안국동 역 주위의 풍경은 전보다 번잡해지고 매연 냄새가 진동하긴 했긴만
오래된 그 좁은 도로가 주는 낯익은 느낌은 그대로였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헌법 재판소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담장에서 보면 바로 보이던 그 고풍스런 벽돌 건물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더 뒤쪽인가? 아니야, 바로 길에서 보였어."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
"들여보내 줄까?"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정문에 들어서니 관리실 문이 열리며 경비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숨길 게 뭐 있으랴.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경비가 말한다.
"에이, 건물 다 없어졌어요. 천천히 한번 둘러보세요."
이럴 수가.......ㅠ.ㅠ
건물 뒤로 돌아드는 순간, 눈에 들어온 나무.
바로 백송이다.
이 나무의 가치에 대해서는
학생 시절 정말이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었다.
백송이란 것 자체가 귀하기도 하지만,
김종서 대감 댁 뜰에 있던 나무라는 이력이 덧붙어서
이 나무는 학교의 상징이었다.
다른 나무였다면 다 베어졌을 텐데 천연기념물인 덕에 유일하게 남아 있구나..했다.
당시보다 주위를 그럴싸하게 가꿔놓아서
위용을 자랑하기엔 더 좋다.
그땐 철책 하나 둘러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나무 옆을 지나 건물 뒤의 소롯길로 접어드니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은 등나무 휴식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거....... 이거 운동장 가에 있던 스탠드 아냐?"
"그런가?" 반신반의하는 친구.
"맞아. 소운동장 가에 있던 스탠드.
백송 바로 옆쪽으로 있었잖아."
"그런 것 같다. 등나무 스탠드였는데..."
체육대회 때 앉아서 응원을 하곤 했던 등나무 스탠드가
살짝 개조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 반가움이란......
이곳이 더욱 반갑고 그리운 이유는
고3때 야자를 하다가 몰래 빠져나와서
친구와 학창시절의 고민과 개똥철학을 주고받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친구가 바로 이날 함께한 친구다. ^^)
꿈도 많고, 웃음도 많던 때였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는 걸 사실은 알고 있었다.
또 지난 1년 동안 함께 즐거워하며 고3을 맞았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밤이었기 때문에 진지해졌던 것 같다.
호젓한 스탠드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살랑살랑 밤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을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소녀들은 어른이 되어갔고,
마음속에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잠시 추억을 떠올리다가 발길을 돌리니
이렇게 댕강댕강 잘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이 나무 역시
학교 교정의 한편을 말없이 지키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백송처럼 주목받지 못한 탓에 기억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뒤돌아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찍었다.
호젓하니 길은 예쁘지만,
이건 학교가 아니다.
장난꾸러기 S가 감 따러 올라갔다가 선생들한테 혼나곤 했던 감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도 그 비명을 듣지 못한 채 베어졌겠지.
방과 후 N을 기다리던 운동장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또 어디로 갔을까.
실내화 바람으로 길 건너 문방구에 만두 먹으러 갔다가
교장이 소리지르면서 달려오는 바람에
골목으로 튀어 현대 본사까지 돌아왔던 일,
실내화를 교실에 두고 통학했기 때문에(물론 금지되어 있었음)
신발 바람으로 교실로 들어가다가 교무실서 나오던 선생한테 딱 걸려서
출석부로 얻어맞을 뻔했던 일,
잘생긴 불어 선생 보겠다고 서예실 청소하러 오갈 때마다 교실문 창을 기웃거리던 일... ^^
(남학생들은 많은 여학생들이 귀엽고 여성스러울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사춘기 여학생만큼 말망아지들도 또 없다.
아마 여형제가 있는 남자들이라면 잘 알겠지.. 훗훗)
모든 건 다 내머릿속에만 남아 있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는 고등학교 시절에 순수한 꿈과 일탈의 즐거움이 가득했더랬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그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만큼 보수적인 분위기의 학교였는데.
언제 더 많은 것들이 잊혀지기 전에
이런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죄다 끄집어내고 싶다.
* * *
서삼릉에서 경마교육원을 거쳐 안국동의 헌법재판소까지...
참으로 기나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