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또 체해서 4~5일 고생하고 위장약 먹으면서
한동안 커피랑 홍차를 좀 멀리했었지만
결국 며칠 못 가서 다시 입에 대기 시작.. -_-;;
차나 커피를 안 마시니 소화가 더 안되는 거다..;;;

오늘 어무이랑 대흥코리아 주방용품 창고 대방출을 한다고 해서 바우하우스에 갔다가
눈에 번쩍 띈 티팟이 있었다.
아니지...
사실 눈에 번쩍 띈 것은 믿을 수 없는 가격...훗훗



바로 요건데..
믿을 수 없는 가격
단돈 5천원!!!
(무슨 광고 같구나..ㅎㅎ;)
중국산인가 했는데.. 아니~ 일제 하리오사 제품이다.



 
뭐더라.. 티팟도 아닌 티펫이라는 이름이 특이하고
입구 부분이 티팟 치고 좀 이상하다 했더니
커피 서버와 티팟 겸용으로 쓸 수 있게 출시된 상품인 듯.
뭐든 알아야 진가를 안다고
무수한 주부들이 용도조차 몰라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거겠지.
덕분에 아주아주 싼가격에 내 손에 들어왔지만. ㅋㅋ



집에 오자마자 깨끗이 씻어서 홍차를 우렸다.
선택한 홍차는 할센 앤 리온의 아프리코트(살구).
초여름까지 자주 마셨다가 한동안 뜸했던 녀석이다.

물 250밀리 정도에 찻잎은 2.5그램 정도 넣고 3분을 우림.
뚜껑이 필터 구실을 하기 때문에 별도의 거름망도 필요없다.



기다리는 즐거움.
전체 300밀리나 350밀리쯤 되려나??



마침내 잔에 따랐다.
필터가 찻잎을 모두 막기에는 좀 엉성해서
자잘한 찻잎들이 빠져나왔다. (뭐 그래도 귀엽고 편하니깐..)

오랜만에 마셔본 아프리코트는 역시 맛있다.
향긋한 향은 복숭아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향미가 난다.
그래도 신맛이 강한가 하면 그렇지 않고
마시기 편한 달콤함과 아주아주 부드러운 신맛?
게다가 할샌의 이 차는 떫지도 않고 깔끔하기를 자랑한다.
할샌의 다른 차들도 이럴까??



오랜만에 티푸드를 같이 했다.
본마망의 라즈베리 타르트.
예전에 사은품으로 받아서 먹었던 레몬 타르트의 기억이 너무 좋았는데
이것 역시 맛있다.
새콤달콤 라즈베리의 맛과 아프리코트의 궁합도 잘 맞네~ ^^

자.. 슬슬 저녁을 하러 갈 시간~!!
오늘 저녁은 닭갈비 양념해둔 것을 밥 볶아 먹어야지~~ㄹㄹㄹ
Response : ,

3일이나 되는 연휴를 그냥 집에서 썩기엔 아깝다 싶어서
수뎅이에게 수원성 답사를 제안했다.

어째서 사도세자와 정조가 묻힌 융건릉이 수원에 있다고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하루에 두 탕을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가기 전날 인터넷을 뒤져보니
융건릉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하고 있었다. -_-;;
그래서 예정없이 대강대강 해치운 답사길 되시겠다....;;;



부끄럽지만 내 평생 처음으로 발을 디뎌본 수원의 수원역 모습.
알고보면 촌순이라 별로 나댕기질 않다보니
서울의 영등포조차 두어 번 발 디뎌본 사람이 바로 나다.

11시에 종각에서 만나 1호선을 타고 수원역에 내리니 12시 10분경.
융건릉에 먼저 들렀다가 수원성을 보자는 수뎅이의 말에
점심도 수원역의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로 때웠다.
그리고 집에서 보온병에 타가지고 간 딜마의 캐러멜 밀크티와 함께.
수뎅이가 맛있어해서 싸간 보람을 한창 느꼈다. ㅎㅎㅎ

햄버거를 먹고 떠들 때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융건릉에 가는 버스.
인터넷서 찾아간 정보에는 24, 24-1, 46, 46-1의 네 대나 되는 버스가 있건만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나도록 아무 버스도 지나가지 않는 거였다.
시간은 바야흐로 1시를 넘어서고..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_-;;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포기하려는 찰나에 46번이 나타났다..에휴~~
(이때 이미 돌아갈 길이 걱정되더란 말이지...ㅠ.ㅜ)



수원역서 30분 넘게 걸려 도착한 융건릉의 입구.
입장료 1000원을 기꺼이 내고 사뿐히 들어서니
예의 기분좋은 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기분좋은 산책길.



울창한 나무들을 지나서 가다보니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저것은 화장실?? ^^;;



먼저 도착한 곳은 사도세자(장조)와 헌경왕후 홍씨(혜경궁 홍씨)가 묻힌 건릉.
멀리 익숙한 구조의 정자각이 보인다.
이미 서삼릉을 다녀오면서 한 차례 능 답사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빨리 수숸성에 가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사진만 찍음. -_-;;



연휴라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왔다.
능 간다고 하면 대뜸 "능이 다 똑같지 뭐 볼 것 있느냐?"고 하시는 부모님.



모르시는 말씀.
예전에 서약철학 교수님이 그러셨다.
"무덤 옆에서 하룻밤을 새워봤는데
세상에 그처럼 맘 편한 곳이 없더라."
공동묘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밤 새우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양지바른 곳의 무덤가만큼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곳도 없다.
고달픈 한세상을 마치고 양지바른 곳에 누워 쉬고 있을 고인의 넋을 생각하면
나 또한 이처럼 양지바른 곳에서 편안히 쉬고 싶어진달까.



조금 가까이 보고 싶어서 끌어당겨 찍어봤지만
역시나 너무 먼...;;;

본래 사도세자의 묘는 동대문구 휘경동의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가 경기도 화성(당시엔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 했고,
장조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높이게 된 거라 한다.
배봉산이면 바로 뒷산인데.. 그런 사연이 있는 것도 몰랐군. -//-
휘경동이라는 이름도 원래의 묘 이름이었던 휘경릉에서 유래했단다.



융릉의 신도비각.



비각 안의 신도비.
신도비가 뭔가.. 하고 찾아보니
신도, 즉 귀신이 다니는 길에 세우는 비석이란다.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려시대에는 3품 이상,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에 한해서만 세울 수 있었는데,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했었다고 한다.
(그럼 언제부터 다시 세우게 된 거지?)



융릉의 비문을 해설한 글.
건립 연대는 정조 13년(1789년)으로
사도세자의 탄생과 원자 및 세자 책봉 과정과 짧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만.. 1789년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해다.
왕정이 무너지고 인류사가 급변하던 시기의 조선사라....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건릉으로 향했다.
둥글게 판 연못에 연잎이 하늘하늘(?)
잉어도 살고 있다. ^^;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가 묻힌 건릉.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왕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아마 내가 정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읽은 다음부터였던 듯.
정조 암살을 기초로 하룻동안의 일을 써내려갔던 이 소설은
국내 소설에 관심이 없던 나도 무척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잘 보이지 않는 무덤.
어릴 때엔 소풍만 가면 꼭 저 석상에 기어 얼라가 놀고 사진을 찍었었다.... -//-
지금은 아무도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지 않는다.
그만큼 문화적 소양이 높아진 거라 생각한다.
많은 포부를 끝까지 실현하지 못해 아쉬웠을 정조대왕의 안식을 빌면서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무척 많았다.



제사 때 이용하는 계단.
이 역시 왼쪽은 신이 올라가는 계단이라고 했었지.
계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구름 문양(맞나?



건릉의 신도비각과 눈길을 끄는 단청.
빛바랜 듯한 연둣빛이 눈길을 끌었다.



신도비.
이 역시 정조의 생애가 짧게 적혀 있겠지.



이제 한시바삐 수원성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계를 보니 3시가 넘고 있었다.
올 때 그리도 오지 않던 버스가 갈 때인들 제때 올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33번 버스만 열심히 오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46번이나 2번은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을 보니 작게 꾸민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4시가 되자 마음은 이미 절망 상태.
아무래도 수원성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수뎅이 왈
"이럴 줄 알았으면 33번이 범계로 가는가 본데 저것 타고 범계역 가서 수원역 가는 게 빨랐겠다." 하는 거다.
후회할 게 뭐 있나.
지금이라도 46번 포기하고 범계로 가는 게 낫다 싶어 33번을 올라타고 범계로 향했다.



세상에나.
융건릉에서 한 정거장 가니 용주사가 있고
(여기도 승무제를 끝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들 타셨다.
아깝다. 이런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얼마 안 가니 범계역이다.
ㅠ,ㅜ
혹시나 융건릉 가시려는 분들~~
절대 수원역서 가지 말고 범계역에서 33번 타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
범계에서 수원역은 2정거장밖에 안 된다.

어쨌든 생전 처음으로 범계역에도 갔다.
시골스런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역은 도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앞으로 이곳도 몇 년 뒤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을 걸 생각하니 조금 섭섭...
도시인의 이기심인 거겠지?
Response : ,

최진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Posted 2008. 10. 3. 12:47, Filed under: 디 마이나



연예인들의 자살이 어쩌구저쩌구.. 했어도
사실 그렇게 큰 충격을 느낀 적은 없었다.
몇 해 전,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나
옥탑방 고양이 때 얼굴을 익혔던 정다빈의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연민에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왜?" 하는 단순한 흥미도 있었다.
더욱이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내게 안재환의 자살 소식은
그가 정선희의 남편으로밖에 각인되지 않아서인지
내게는 안재환의 죽음이 아니라, 정선희 남편의 자살로 다가왔다.

그런 내가 어제 아침,
최진실의 자살 소식과 뉴스를 접한 이후부터는
내내 마음이 착잡하고 우울하다.
무얼 해도 가슴 한구석에서 그녀의 죽음의 무게가 덜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이은주나 정다빈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똑같은 연예인인데 왜 내게 그녀의 죽음이 더 가슴아프고 편치 않은 것일까.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그녀의 죽음은 내게 스타나 연예인의 죽음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그녀의 삶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은주나 정다빈의 죽음은
아직 꽃피워 보지 못한 젊은 청춘의 죽음이었다.
나는 이미 그런 청춘의 나이는 아니니
젊은이의 초상이라는 제임스 딘의 죽음에 열광할 나이는 아닌 것이다.




지금은 억척 아줌마에
죽기 살기로 용쓰는 맹한 아줌마로 이미지화되고 있었던 그녀.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진실은
아니지.. 내가 기억하고 싶은 최진실은
결혼이라는 인생의 걸림돌에 좌초되기 이전에 해맑게 웃던 그녀다.

<당신의 축배>였던가?
제목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오랜된 드라마에서 김무생의 막내딸로 나와
깜찍한 외모와 통통 튀는 연기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이후 삼성전자 CF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발랄한 매력을 뽐내던 시절,
나 역시 인생의 무게를 모르면서 인생을 번민하던 풋내기 학생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1위 자리를 지키고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그녀가 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스타로서 빛나던 시기에
나 역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젊음을 누렸다.
<질투>니 <별은 내 가슴에>니 인기 절정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집으로 달렸던 날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아슬아슬한 애정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청춘의 열병에 같이 동참했던 날들.
인생이 줄곧 이렇게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내심 알면서도
미래를 알려 하지 않고 기꺼이 즐거워했던 날들이었다.



세기는 바뀌어서 2000년대를 맞았다.
그것은 더이상 지금의 자리에 머무를 수 없음을 뜻하는 동시에
나도 그녀도 영원한 청춘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2000년에 나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녀는 하든 안 하든 후회한다는,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 속으로 기꺼이 편입되어 들어갔다.

물론 사랑하니까 결혼한 거다.
하지만 그녀가 20대 청춘이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그래서 결혼은 세월과의 타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녀는 스타의 삶이 아니라
여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제아무리 스타라도 비껴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남편의 외도, 폭력, 
상처받은 자존심과 모성애 사이에서의 고통....



이후로 그녀는 더이상 스타 최진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네 여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여자요, 아이들의 엄마로 보여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연기를 잘하는 탤런트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내가
그녀의 연기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은.
1박 2일 일정으로 놀러간 속초의 모텔에서
친구가 목욕탕에 들어간 사이에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방영 중이었다.
하얀 병원 시트 위에 누워서
그녀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내게는 그것이 연기가 아니라 그녀의 진짜 설움이 북받치는 것처럼 보여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함께 눈물을 뽑아냈는데,
드라마 속 맹순이가 슬퍼서 운 게 아니라
최진실이라는 한 여자로서의 슬픔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10대 소녀는 많은 꿈을 꾼다.
20대의 청춘은 꿈의 반을 버리지만 그래도 아직 인생을 즐길 여유가 있다.
아직은 충분해 보이는 연료 탱크를 믿으며
이 정도라면 부산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30대가 되면서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꿈을 꾸려고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삶의 희망을 노래해도 마음 한구석에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기분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모진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식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많은 거짓된 목표로도 자신을 속일 수 없었던 것일까.
삶이란 고단하고 힘들고 외롭다는 걸,
인생의 반을 살아봤지만, 남은 반생도 뻔히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걸 깨닫는 순간
삶의 목적은 희석되고
죽음의 유혹이 덮친다.


* * *


세간에서는 악성 댓글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한다.
물론 악성 댓글로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으로 그녀가 아주 많이 외로웠을 거라고
그래서 끝내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채워지길 소망했으나
끝내 충족되지 않았을 깊은 외로움이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사람은 외롭다.
외로운 존재다.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남편이 있어도
아내가 있어도
자식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고독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살 만한 구석이 있다면
비빌 언덕이 있다면
그래도 또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마치 오랫동안 안면이 있던 친구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성공, 웃음, 눈물, 고통..
기나긴 삶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나처럼 그 친구도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먹겠거니 믿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훌쩍 등져버린 것 같은 충격과 일말의 자책감.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녀는 작은 비빌 언덕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세상 모든 곳이 송곳처럼 뾰족한 가시풀밭이었을까.

항상 나오는 말이지만,
결국 타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공범자다.
그래서 늘 죽은 이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스러운가 보다.

부디...
죽어서라도 그 영혼이 평안하게 쉴 수 있기를..............
Response : ,

« Previous : 1 : ···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 : 13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