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어떤 인간일까,에 대한 주제에 관해 수십 년째 생각해왔다.
별자리로 알아보는 나,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나,
생년월일 사주에서 말하는 나,
내가 생각해보는 나, 남들이 말하는 나.....

그중에서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다 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나란 인간이야말로 정말 양파 껍질처럼 그 속을 알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양파 껍질에 비유되는 인간은 그 속꿍꿍이를 전혀 알 길 없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양파 껍질이라고 말한 것은 속마음을 알 길 없는 어려운 사람이라거나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라거나 하는 그런 맥락에서는 아니다.
단지, 참으로 복잡한 측면들을 갖고 있어서 간단히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은 게 바로 나로구나... 한다는 것.
물론 누구나 그렇게 복잡한 면을 갖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골똘히 자기 자신을 이리 파헤치고, 저리 들여다보고 하지는 않을 뿐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후배는 블로그에 "이성적인 선배님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겠지만.."이란 말로 답을 하고 있었다.
그순간 내가 남들 눈에는 참으로 이성적인 인간으로 비쳐지는구나... 하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나 자신은 스스로를 매우 '감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고교 시절부터 내 인생 최대의 과제 중 하나는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 지키기였다.
폭발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살고 싶었고,
파르르 예리한 날에 베이는 듯한 가슴 아린 신경줄을 둔하게 하고 싶었다.
치밀어오르는 권태와 구역, 복잡한 실타래가 얽힌 듯한 이유 모를 절망과 허무가 10여 년을 괴롭혔다.
'둔해지기, 둔감해지기, 산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

이성이 끝없이 날을 벼리고
감정이 용암처럼 들끓던 그 시기를 지나서
오늘에 이른 건가.
그리고 비로소 남들 눈에 '이성적인 인간'으로 비쳐질 만큼 스스로의 감정과 감성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걸까?

다시 한번 자문해 본다.
단정짓는 것은 속단이니까.
나는 늘 나를 다시 헤집고 파헤치고 들여다보니까.
그러면 나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완성된 것일까.
아니면 이성적인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만 지금의 나는 일시적으로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는 상태인 걸까.
불현듯 잊고 있던 내 성격풀이가 불쑥 떠오른다.
"감성과 이성의 비틀림.
균열이 일어나면 매우 힘들어한다."

내가 이성적인 인간인 건 맞다. 그러니 이렇게 나를 또다시 들여다보고 있지.....
그래서 나는 윤동주의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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