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이다.
봄이 저 남쪽에서 오는 게 아니라
먼저 내 마음 저편에서 봄바람이 불어온다.
꼬박꼬박 숨돌릴 틈도 없이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생활의 틈새로
어느 작은 문틈에선가 살랑살랑 꽃바람이 불어들고 있다.
항상 대기 상태인 듯한 기분이 버거워지면서
하루라도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한순간 한순간을 마음껏 느껴봤으면.. 하는 욕망이 치솟는다.

그 결과가 딸랑 하루의 콧바람이었으니
4월 22일 목요일에 모처럼 시간을 만들어 부모님과 행주산성이랑 일산호수를 다녀온 것이다.
딱히 어딘가 가보고 싶었던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소는 아무데나 좋다고 생각했기에
'행주산성은 가봤냐?
일산호수는 봤냐?"는 아빠의 말에 무작정 "오케이!" 사인을 했던 것.
서울 살면서 63빌딩도 겨우 두어 번 갔는데
하물며 일산이나 행주산성이야..ㅎㅎㅎ;;

사실 남한산성 얘기도 나왔었지만
남한산성은 몇해 전 다시 가보고 실망만 하고 와서 이것만큼은 거절했다.
계곡마다 즐비한 음식점이랑 불쑥불쑥 솟아오른 모텔에
서울보다 더 시각 공해를 유발한다.




1. 행주산성을 돌아보다

원래는 일산호수를 먼저 돌아보고 행주산성은 오는 길에 볼 생각이었으나
아부지께서 길을 잘 못 드시는 바람에
행주산성을 먼저 들르게 되었다.
산성이라고 해서 산이 300미터는 넘을 줄 알았는데
100미터 좀 넘는 높이라서 뜻밖이었다.
울집 뒤에 배봉산 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산인데 중요한 요지였다니~
아부지 왈 "서울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기 땜시~"




행주산성을 들어서는 대첩문~
사진 찍는 동안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들어가신 아부지의 뒷모습~
(뒷머리가 하나도 없으심..ㅠ.ㅠ)



들어서자마자 걸려 있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읽을 줄 아느냐고 옆에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부모님.
왜 이러셔요, 쓸 줄은 몰라도 읽는 건 쪼오끔 한다구요~ -_-;
그런데.....
성공과 명성만 생각하는 남자와
의로움만 중시하는 남자 중에 고르라면??
(아~~ 왠지 내 입장에서는 두 다 싫구나...ㅠ.ㅠ
전자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라 인성이 마음에 안 들고
후자는 유아 단계의  마초남 같아서 역시 싫다.)



산성 위는 선선해서인지 이제 갓 봄이 깨어나는 그런 느낌~
이날 비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날씨는 엄청나게 흐려서 사진이...쿨럭!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권율 장군의 동상.
어릴 때 권율 장군이랑 행주대첩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옛날보다 시들해진 느낌.
시대에 따라 새롭게 각광받고 또는 잊혀지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다.
개나리가 길 양쪽으로 피어 오는 손님을 맞이해주고



가지마다 하얀 꽃이 핀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아무리 봐도 벚꽃은 아닌 것 같아 여쭈어봤더니 매화꽃이란다.
매화는 내 키만한 정도의 작은 나무일 줄 알았는데 헐~ 나무가 무지 커서 깜짝 놀랐음.
벚나무보다 가지가 촘촘하지 않아서 어딘지 단출한 느낌이 들고
하얀 여인의 소복이 생각나기도 한다.




얼른 점심 먹으러 가자고 서두르는 어무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치셔서
하는수없이 행주산성 근처에서 먹기로 했는데 막상 산성 주변을 뒤지니
전부 오리고기집이나 백숙집밖에 없었다.
어쩐지 이런데는 꼭 식당 한쪽에 오리나 닭을 기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TV 때문인가)
아무리 놓아기른 닭이 맛있네 어쩌네..해도
내가 시킨 주문 때문에 조금 전까만 해도 잘 살고 있던 닭이나 오리가 죽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다.
결국 일산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행주산성을 떠나오다.



일산의 한 음식점에서 주문한 오삼두루치기.
같은 고기인데 이미 잡아놓은 건 먹어도
살아 있는 걸 잡아먹고 싶지 않다는 건 모순이다.
고기 자체를 먹지 않아야 마땅한데
먹으면서도 양심에 찔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한다.
그저 죽어간 돼지와 오징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이지만
그 또한 자기 만족을 위한 변명일 뿐.



반찬은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오삼두루치기가 매콤하니 맛있었고



특히나 미역국이 맛있었다.
특별히 들어간 게 없어 보이는데도 시언하니 맛있어서 두그릇이나 먹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2시 반이 다 되어서 서둘러 일산 호수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하지만 일산호수 사진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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