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요즘 극장가가 뜨겁게 들끓고 있다.
항상 이맘때면 뭔가 한 건을 올리는 영화들이 나오는 것 같기는 한데
요즘처럼 두 영화가 단시간에 기록을 갈아치우며
거세게 입김을 내뿜은 적은 없었던 듯.
돌아가는 품새를 보니
왠지 '아바타 VS 전우치'의 대결 구도처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는데
하필이면 이게 외화와 한화라서 그런지
TV매체에서는 은근히 '전우치'를 열심히 띄워주는 느낌도 든다.

다행히 동생 덕분에 크리스마스날에는 '아바타'와 '셜록 홈즈'를 연달아 보는 특혜를 누렸고
(그것도 왕십리 CGV에서 3D로)
신정 연휴에는 '전우치'도 보는 무지막지한 은혜를 입었다. >0<
'터미네이터' 이후로 제임스 카메론의 팬이 된 만큼 그가 연출한 영화를 놓치기도 싫었고
김윤석의 팬이 된 만큼 '전우치'도 보고 싶었는데
두 편을 모두 보는 기회를 얻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사실 아바타는 제임스 카메론 연출이라는 것 하나만 믿고 보고자 했던 영화였다.
엄청난 아바타의 세계를 3D로 구현해낸 놀라운 작품..어쩌고 저쩌고 해도
한번도 3D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전혀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게다가 전체적인 스토리가 누구말마따나 '포카혼타스'같은 느낌이 팍팍 풍기는 이야기라서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예전부터 백인 남자와 원주민 처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엄청 싫어한다.
어쩐지 그런 구도를 보고 있으면 역겹다는 기분이 드는데, 뭐랄까....
인디언 남자들을 거세해버리고
그 위에 더 강한 백인 남자들을 대체시켜 원주민 여자들을 정복함으로써
교묘하게 자신들의 정복 사실을 남녀의 사랑으로 은폐하려는 듯한 기분이 든달까?
자신들의 죄를 사랑으로 아름답게 포장하는 기분도 들고
인디언들의 정신을 숭배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자신들이 계승한 양 구는 것처럼도 보이고,
유치하고 힘없는 용사로 전락하는 인디언 전사들의 모습이 괴롭기도 한 탓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기분은 그 옛날 '라스트 모히칸'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본 인디언들은 항상 악역이었고 야만스러웠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영화 속 인디언이 달라졌다.
그들은 멋지고 훌륭한 전사로써 당당하게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을 맞아들이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더니 이번에는 그 인디언 용사들의 자리를 백인 남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한 것.
'라스트 모히칸'의 모히칸은 백인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고
정작 진짜 마지막 모히칸은 어딘지 유치한 경쟁심을 불태우는 그런 인물로 그려졌었다.
(난 지금도 왜 그 영화가 그토록 당시에 칭찬이 자자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좀 이상한데로 흘렀지만,
사실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아바타'도 이 구조에서 별로 벗어나지는 않는다.
인디언으로 대체될 수 있는 나비족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백인 남자.
그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정신과 그들이 사는 세계에 점차 매료된다.
그러나 ''아바타'가 앞서 나온 영화들보다 진일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다름아닌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인간 세계(즉, 백인들의 세계)에서는 참으로 나약하고 별볼일없는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한때 잘나가는 해병이었으나
사고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된 남자.
교통사고로 죽은 형 대신 아바타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점을 빼면
그의 인생은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비참한 인생일 뿐이다.
그는 실제로 현실 속에서 꽤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나는 그가 건강한 아바타의 몸뚱아리로 딛고 섰을 때의 미칠 듯한 감흥을 표현한
제임스 카메론의 연출을 높이 산다.
장애의 굴레를 벗어나 새롭게 얻은 육체.
새 육체를 통해서 그는 포기했던 행복, 잊고 있었던 신체의 자유,
 그로 인해 엔돌핀이 솟구치는 무한행복에 취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신체 자유로운 인간 남자였다면?
매력적이고 멋진 그런 남자였다면 그는 나비족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아니, 애시당초 그토록 오랫동안 아바타 세계에 남아있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시바삐 성과를 이루고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게 자유로운 현실 세계로 돌아와
더 아름다운(눈에 익은 외모인 같은 종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이 정상) 애인의 품에 안기려 했을 것이다.

내 눈에 주인공의 선택은 사랑의 결과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비쳐졌다.
그 덕분에 '아바타'는 멋진 백인 남자가 인디언 여자를 사랑하고 인디언화한다는
구토나올 것 같은 설정을 살짝 비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바라본다면 낭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이익과 계산만이 행동의 원인으로 남는다.
그래서 감독은 초콜릿처럼 사랑을 입히고 그 위에 영웅의 전설을 끌어다붙인 게 아닐까?

하지만...
솔직히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기적인 면, 계산적인 면이다.
인간은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이기적인 것이므로.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아바타의 신체를 택하는 것은 그에게 희생이 아니다.
그는 건강한 신채로 새로 태어나 부활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가 지구로 귀환할 수 없기 때문에 곧 죽을 운몀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아바타의 신체를 갖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좀더 솔직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는 병든 자신의 육체와 함께하기보다 아바타의 건강한 신체로 대지를 뛰어다니며 행복해했으니.

문득 작년에 본 영화 '디스트릭트 나인'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그는 건강한 육체를 지닌 평범한 남자였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소심하고 
권력을 가진 장인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남자.
힘없는 외계인 앞에서는 권력을 행사하면서
적당히 인정도 베푸는 선인도 아닌 악인도 아닌 그냥 보통의 사람.
그는 '아바타'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운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은 인간이지만 몸은 외계인이 되어버린 남자는 쓰레기와 먹다 남은 통조림을 뒤지며
한때 인간으로 살던 시절의 아내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인간으로도 외계인으로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주인공은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역시 '아바타'는 3시간이라는 시간에 비해 스토리텔링이 단순하고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카메론 감독의 연출력인 듯.
특히 3D라는 입체 영상은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바타 2'를 만들 거라고 하니
이제 더이상 포카혼타스식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리라 기대해본다.
'터미네이터'보다 '터미네이터 2'가 더 강렬하고 짜릿했던 것처럼
'아바타 2'에서 그가 보여줄 세계관은 좀더 진일보한 것이었으면 싶다.
그가 보여준 입체 영상의 놀라움만큼이나!!

뱀발 : '전우치' 후기도 함께 올릴 계획이었는데 압'아바타'에 너무 올인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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