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갑자기 따뜻..
아니, 다소 덥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기온이 급상승했다.

어제부터 견비통과 함께 스멀스멀 조짐을 보이는 두통으로 기분도 좋지 않고,
아침부터 어뮈와 한판 한 탓에 마음은 스모그가 잔뜩 낀 하늘 같았다.
그런데도 토욜이라 아파트 앞 놀이터에는
일찍 학교에서 돌아와 뛰노는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생기가 넘쳤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을 둘러보니
달리 할 일도 없는데 잠이자 자wk..하고 
노랑 침대에 들어가 똬리 틀고 있는 찌룽 아씨만이 눈에 띄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꼭 아씨를 뫼시고 나가보고 싶어진다.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아니면 찌룽아씨의 외출을 빌미 삼아
조금이라도 스스로 봄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건지... ^^;;

백만년만에 잠자고 있던 하네스를 꺼내어
찌룽이 목에 건 다음
번쩍 쳐들고 밖으로 나갔다.
(근데 우리 아씨가 살이 쪘나...
하네스 채우는데 다소 애를 먹었다.)

잠자다 날벼락 맞은 찌찌...
하네스 걸고 나서는 순간부터 사시나무의 화신이 되었다. -_-;;



현과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
나무 이름도 모르고 제대로 눈여겨본 적도 없엇는데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근데 찌룽이를 어깨에 들쳐매고 찍어서.. 뭔가 사진이 이상하다.)



찌룽이가 난리를 쳐서 몇 장 찍은 끝에 겨우 건진 접사 사진.
이거 매화나무인가??
꽃 모양은 그림에서 본 매화랑 닮았네.
가지도 어쩐지 수묵화에서 본 거랑 닮은 것도 같고...



반대편에 서 있는 나무의 새순.
순들이 모두 꽃처럼 피어난다.



사진을 좀 잘 찍어보려고 현관 앞에 내려놓았더니
현관 안쪽 우편함에 서 있는 아지매가 무자게 신경쓰이는 찌룽.



이때~!!
난데없이 나타난 택배아자씨를 보고 화들짝~!!!



다닥다닥
가지 전체가 동글동글 꽃눈으로 가득 뒤덮였다.
이 장소에 있던 나무가.. 뭐였더라?
작년 봄에 이쯤에서 라일락나무를 찍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아직 라일락이 피기에는 이른 듯......-_-;;
미안, 넌 누구니?? ;;;;



꽃눈이 가득 맺힌 나무 바로 옆에 넓적한 바위가 놓여 있다.
그곳에 찌룽이를 내려놓고 나도 곁에 앉았다.
자전거를 타며 마당을 도는 아이들을 보느라 이성을 잃은 찌룽이.



가까이서 찍은 찌룽이.
귀는 사방팔방 쫑긋거리고
고개도 수시로 돌아가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



난데없는 마징가 귀까지~!!!
대두묘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시는..ㅋㅋㅋ



하두 고개를 돌려싸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찍은 게 거의 없다. ㅠ,ㅠ
찍고 나면 이미 고개가...
어쨌든 자전거 타는 아이들 아니면
택배 아저씨가 카트에 물건 담는 걸 열심히 보고 있는 중.



이때 갑자기 길 따라 걸어오시는 경비 아저씨 발견!!
"아저씨, 안녕? 우리 구면이죠??" ^^;;



"흥! 아저씨~ 나의 미모에 경의를 표하지 앉으시다뉘~" ㅋㅋ
살짝 야린 표정을 날리시는 찌룽 아씨.
(사실은 사진 찍으렸더니
홱 고개를 돌리다가 저런 본색 드러나는 얼굴이 나와부린 것.
흔들렸지만 표정이 넘 귀여워서~ㅎㅎㅎ)



찌룽이 옆에 나란히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 노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찌룽이도 점차 안정을 찾고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다소 느긋해진 자세로 귀경을~;;;



위를 쳐다보니
아파트 건물에 가려 비좁은 하늘이 보인다.

몇해전, 버스를 타고 제기동 근처를 지나다가
차창 너머로 펼쳐진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은 단층과 2~3층 상가뿐인 건물들 위로
저녁 노을에 분홍, 연보라, 청보라로 물든 뭉게구름이 깔려 있고
짙어져가는 남청색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늘을 가릴 듯 높아져가는 도심의 하늘이 답답하기만 하다는 걸,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그때 새삼 깨달았다.
인간은 왜 스스로 삭막한 생활을 갈구하는 걸까.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아파트와 고층빌딩들이
거대한 문명의 폐허로 변한 SF 영화의 장면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봄볕을 쬐고 앉아서 단꿈에 젖는다.
늙으면, 교외의 마당 있는 단독에서 살아야지.
소위 말하는 전원주택, 뭐 이런 거 말고,
그냥 사람 사는 냄새 나는 그런 단독.
마당에는 자기네끼리 막 자란 듯한 나무랑 꽃이 있고,
닭과 병아리들이 마음대로 뛰놀고.
아, 거위도 있으면 더욱 좋겠지?..ㅋㅋ
할머니를 쫓아다니는 개도 있어야 하고,
할매의 손길을 받으며 낮잠을 청하는... 그런 냥이도 있어야 하고. (응??)



상념에서 벗어나 산책을 시작했다.
길 가다 깜짝 놀라서 쳐다본 이것~
이래저래 살펴보니 나무는 아니라 원래 선인장이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말라 죽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심어놓은 것이 겨우내 얼어죽은 것 같다.
왠지 주검으로 자신의 비석을 세운 듯이 느껴진다.
존재의 부르짖음.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꼼짝도 안 하던 찌룽이가
비둘기를 보더니 고개를 쑤욱 내뺀다.
찌룽이에게서 살의라도 느낀 것인가?
날기 직전의 비둘기.
잘 보면 날개가 부풀고 있다.



걷다 보니 발길이 자연스레 토토의 무덤가로 향하고 있었다.
벌써 몇해째 가보지 않은 토토의 무덤.
나무도 파헤쳐지고
우리가 만든 무덤 표식들도 다 없어진 이후로
마음이 괴로워서 다시는 가지 않았다.
발길은 향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다시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싸늘하게 빳빳하게 굳은 그날 밤,
눈물을 흘리며 한밤중에 매장을 하고 왔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왜 너를 그렇게 서둘러 묻었을까.
조금은 제대로 된 장례를 치렀더라면
훼손된 무덤 때문에 자책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인간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은 슬프고 괴로운 추억이 아니라,
추억과 함께 다시 겪어야 하는 자책감인지도 모르겠다.



걷다가 문득 눈에 띈 파란대문 집.
새로 칠한 것인가?
가끔 다니던 길인데도 오늘따라 시선을 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산에는 진달래도 피기 시작~!



토토가 묻혀 있는 산으로 오르는 계단.
한때는 일년이 넘게 매주 올랐던 길이다.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서 앉아 쉬었다.

6년이나 지났다.
예전부터 빌었지만,
토토가 지금쯤은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할 뿐이다.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마음에 그늘 없이 살아서
그 다음 생에도 또 아름답게 태어나기를~
토토를 다시 만나려면 
나 역시 좋은 일 많이 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욕심 많은 인간인지라 그건 어려울 것 같다. ㅠ.ㅠ

잠시 앉았으려니 찌룽이가 집에 가자고 보챈다.
하긴...
오랜만인데 쫌 쎘지..^^;;
올 때엔 부지런히 걸어서 집으로 고고씽~



집에 오기가 무섭게 역시 헥헥거리며 숨차하는 찌룽이.
빨간 혓바닥 좀 찍을까 카메라를 들이대니
안면 싹 몰수하고 새침을 떠네... -_-;;
근데.. 정말 힘들었나?
어째 갑자기 수척해 보여......;;;


다음은 계단에 앉아 있으니
내 다리 밑에 숨어서 애옹거리며 집에 가자고 보채는 찌룽이 동영상.
좀더 길게 찍고 싶었는데 그만 '메모리 풀'~!




참고로, 이날 짝뚱은 춘천 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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