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쌍화점의 재미와 안 재미

Posted 2009. 1. 3. 18:45, Filed under: 끄적끄적 후기

2008 하반기 영화 운이 <배트맨>에 총집결되었던 것인지
<배트맨 : 다크나이트>를 두 번이나 보고 난 이후부터는
극장 가서 보는 영화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사정상 PMP로 본 <데스 레이스>나 <더 폴>은 재미있었다..;;)

도대체 재미있는 영화란 어떤 것이었던가? 하고 
영화적 재미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동생의 화려한 영화 스케줄 덕분에 2009년 첫 영화로 <쌍화점>을 봤다.

영화 정보는 가능하면 적게 알고 가서 보자는 주의다 보니
아는 거라곤 조인성과 주진모 출연에
동성애 영화다, 야하다~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그러다 영화 보기 며칠 전에 포스터를 보고선
"아니, 동성애 영화에 웬 여자가?" 하면서
츳츳.. 동성애자 사이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쳐야 하는 역할인가 보구먼..하고 혀를 찼더랬다.
(이같은 상상의 원천은
고작 몇 편 보지 않은 동성애 만화 속의 여자들 역할이 늘 그랬기 때문인 듯)

그런데 동생이 영화 보기 전에 주의를 줬다.
"영화 평을 보니 욕을 많이 하더라구.
후반부가 무지 지루하다니깐 기대하지 말고 봐."
"헉!!! 내가 아는 분은 재밌다고 영화 좋아하면 쌍화점 보라고 했는데..."
극과 극을 달리는 평 사이에서
결국 기대도 실망도 접은 채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전적으로 내 동물적 감상에만 의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영화는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남자 간의 동성애 영화가 아니었던 거다.
왕으로 분한 주진모와 총사령관으로 나오는 조인성의 동성애 영화로 알고
극장을 찾은 것부터가 마이 미스테이크였다고나 할까?

사실 남녀 간의 뻔한 멜로 라인 영화도 내 취향이 아닌데
남남 간의 뻔한 멜로 라인이라고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던 이유는 그저 조인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론 조인성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러 간 건 아니다.
하지만 몇몇 배우들은
그들이 택한 영화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된다.
드라마에서 스타로 떴다고 드라마와 엇비슷한 왕자님 같은 얼굴로
스크린에 얼굴 내미는 배우들의 행보엔 그다지 관심 없다.
하지만 드라마적 이미지를 벗어나서 정말 배우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알면서도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조인성의 연기의(특히 목소리나 발음이) 한계를 알면서도
그가 어떤 영화를 골랐을까..하는 관심 때문에 보러 간 것인데,
뜻밖에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왔으니
올 한 해의 영화 운은 좋으려나 보다. ^^;;



시대적 배경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말로 나오지만
딱히 역할 모델이 있는 왕은 없다.
왕이 친위 부대인 건룡위를 결성한 것과 남색 이야기 때문에
자제위를 결성하고 노국공주 사후에 남색을 했다는 공민왕을 거론하는 이도 있지만
그 이외엔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 영화 속 왕은 동성애자라기보다는 애시당초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신체적 불구에 의해 여자를 멀리하고 남색을 하게 되었다는 쪽이 맞을까?
(드러내놓고 남색을 즐겼던 고려의 왕으로 목종이 있으나 이쪽은 고려 전기의 왕이다.)



문제는 후사.
고려 왕에게 시집 온 원나라 공주는 7년이 넘도록 처녀의 몸이고
왕의 사랑을 받은 후궁이 아무도 없으니 그녀들은 늘 울상이다.
원나라에서는 후손이 없음을 빌미로 내정 간섭과 까다로운 요구를 해오고
신하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유리한 인물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전전긍긍이 된다.



왕의 총애를 받는 건 오로지 건룡위 총사령관인 홍림(조인성)뿐.
"충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왕(주진모)의 질문에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고 답하는 순간부터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후 왕의 잠자리 시중뿐 아니라 아침 상도 함께 하는 영광까지 누린다.

영화상에서 홍림은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를 향한 왕의 사랑은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조차 안타까울 정도로 애절하지만
왕을 향한 그의 사랑은 베일에 싸인 것처럼 보일 듯 말 듯하기 때문이다.

그는 왕과 달리 여자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성 불구인 왕의 시중을 들다보니
본의 아니게 동성애에 길들여진 인물인데
이것이 영화상에서 그의 정체성에 다소 혼선을 준다.
그가 사랑한 것은 누구인가?
그는 정말 왕을 한번도 정인이라 여긴 적이 없는가?
이것은 관객 각자의 해석에 맡겨야 할 부분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를 꽃미남 남자들의 애잔한 러브 스토리로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또 꽃미남 남자들의 화끈한 베드신을 기대하고 본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두 주연 배우의 이름값을 생각할 때
"아니, 저런 장면을 찍을 결심을 하다니!!" 하고 놀랄 만은 하지만
그건 처음 한 장면뿐이고
이후는 홍림과 공주의 시도 때도 없는 정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인기 코드인 '동성애'에 맞추어 광고했지만
결국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동성애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동성애자 왕과 양성애자 남자, 그리고 이성애자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 멜로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놓고 보면 다소 진부한 설정이다.
그런데도 나름 재미있는 이유는
영화가 시대극, 특히 권력의 정점인 왕을 중심에 두었기 때문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왕이란 어떤 존재인가?
모든 걸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거나
자신의 것을 빼앗겼을 때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 공포스런 존재.
이 삼각관계 속에 왕이 놓이게 될 때
밋밋한 멜로 라인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포와 스릴에 버금가는 극적 긴장감을 얻고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이라는 멜로의 궁극의 목적에 도달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음란서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음란서생>의 왕에 비해 <쌍화점>의 왕은 여성성이 강한 인물이다.
단순히 자기 것을 빼앗기거나 넘본데 대한 복수로 미쳐 날뛰는 왕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왕.
자신의 애인을 왕비와 합궁시키는 장면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이중심리와 비슷하다.
이 이중성이 파국을 부르는 단초가 됐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왕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왕비를 이해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왕비를 위하고,
홍림을 사랑하고 그답게 홍림을 사랑하는 인물.
이성적이고 초탈한 듯이 보이지만
그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 밑에 활화산보다 더 큰 욕망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복잡한 왕을 연기한 주진모에게 찬사를!!! (짝짝짝)
송지효, 조인성의 연기의 불안정한 틈새를 주진모가 메꾸었다고 해야 하나.
<비천무>에 중국 배우들의 더빙이 난무하지만 않았더라도
드라마를 끝까지 모았을 터인데...ㅜ.ㅠ
어쨌든 <쌍화점>에서 주진모를 보면서 또 한 사람의 멋진 배우가 탄생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영화를 본 성과는 충분하다.



또 하나 <쌍화점>을 보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영화 <색.계>였다.
적의를 가지고 접근한 남자의 첩 생활을 하게 된 여자 주인공이지만
몸을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마음의 경계마저 허물어져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색.계>의 기본 모티브다.

<쌍화점>도 뜯어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왕의 명령으로 합궁하게 된 왕비(송지효)와 홍림(조인성)이지만
몸을 섞으면서 마음까지 섞여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쌍화점>은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한국판 <색.계>라고 해도 무방할 듯.

다만 단 두 번의 정사로 불붙어버린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성급하지 않나 싶지만
뭐, 그전까지 한번도 여자를 품을 기회조차 없었던 남자와
7년 동안 혼자 허벅지에 바늘 찔러가며 살아왔던 여자의 만남이니
그 밤이 엄청나게 뜨거웠을 거라고 생각하자.
(그런 점에서 볼 때 홍림은 왕과의 관계에 그다지 썩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음...응??)



마치 <왕의 남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마지막 장면.
왕의 꿈이었던 이 장면을 보면서 더욱 홍림의 마음이 헷갈리는데..;;;;
이 세상에 사랑이 어디 하나뿐이랴 하고
이것도 관대히 넘어가기로 했다. (착한 관객..ㅎㅎ;;)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래저래 따져보면 또 어딘가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드는 영화다..
무엇보다 영화 장면 중에 조인성의 하얀 궁둥이가 먼저 떠오르는 게 큰 문제.
불필요한 정사신을 길게 자주 삽입하여
"야하면 뜬다"고 외치는 영화계의 나쁜 버릇이 또 되살아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작자님, 감독님들~
야한 것도 꼭 필요할 때에만 넣어 달라고요.
야한데도 목적이 있어야죠.
<색.계>는 야해도 야해야 만 할 목적이 있었다구요~
무조건 야해서 관객이 몰렸다고 생각하시면 큰일나요!!!
부디 성공의 원인을 바로보옵소서~!! 


끝으로 <쌍화점>의 동영상~!!
<쌍화점>의 화려한 궁중 의상도 볼거리에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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