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크리스마스라는 게
점점 더 의미가 없고 썰렁해진다.
어릴 때엔 뭐 과자 봉다리라도 받는 즐거움을 기대하다가
더이상 그딴 걸 조를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20대엔 연인이 없으면 분위기라도 낸답시고
동료들과 시내를 쏘다니고 색다른 저녁식사로 기분을 내다가
밀려다니는 엄청난 인파에 뜨악하곤 그마저도 관둬버렸다.

이후 이브가 되어도 약속 따윈 잡지 않고 언제나 집으로 gogo행.
겨우 내는 기분이라고는 손에 들려 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크리스마스용으로 무진장 맛없게 찍어내는 케이크를 먹다 분노해서
몽땅 관둬버렸으니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평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다.

그래도 올해엔 많은 선물을 받았고
또 많은 덕담을 들었으니
특별한 날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단 생각이 든다. ㅎㅎ;


       *  *  *



그럼에도!!
클스마스 당일에 집구석에 처박혀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는 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나름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티타임에 살짝 스페셜한 것들을 거냈다.



두둥~~!!
이날을 위해 준비해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루피시아의 캐롤을 꺼냈다.
작년에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땐 루피시아 홍차 맛이 어떤지 잘 몰라서 선뜻 구입하지 못했던 것.
이젠 믿을 수 있으니깐. ^^;;;



듬뿍 마셔주리라 하며서 5g의 찻잎을 준비.
달콤한 딸기 향과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가운데
은은한 장미향이 풍겨나온다.
아아.. 이런 블렌딩이었다니~
기대 만빵.



오늘은 밀크티로도 마셔주리라~ 하면서
밀크자도 꺼내서 써주고.



스페셜 티푸드는 아껴 먹고 있는 겐지 파이.
달콤하면서 가볍게 부서지는 맛이 좋다. ㅎㅎ;;



다시 등장한 빨간 망토 티팟.
물 300밀리 정도 붓고
첫잔은 3분 우리고 나서 따랐다.
나머지는 우유를 부어 마셔보기 위해 좀더 우렸다.



역시 머그에 따르니 색이 좀더 진하게 나온다.
딸기 향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단내가 풍기면서 부드럽다.
몇 모금을 마시다가
준비해둔 겐지 파이와 함께 홀짝홀짝 다 비워버렸다.
역시 홍차는 티푸드가 있는 쪽이 백배 맛있다. ^^



그리고 5분 정도 우린 남은 홍차를 잔에 붓고
우유를 부었다.
밀크티는 단맛이 확실한 쪽이 좋기 때문에 메이플시럽도 한 티스푼을 넣었다.
근데 그냥 설탕을 넣을 걸 그랬을까?
딸기 향이 메이플 맛에 많이 죽어버렸다.
그래도 워낙에 메이플 시럽이 맛있다 보니
고소하고 달콤한 게 무지 맛있었다. ㅎㅎㅎㅎ


*  *  *


참,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
혼자서 야단법석 티타임을 갖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동생이
혼자 쌩쑈를 다한다고 비웃었다. -_-;;
매트 깔고 하는 짓이 웃긴다나 뭐라나.

생각해보니
이딴 짓하는 거 옆에서 보면 참 웃기겠다 싶었다.
그냥 대충 차 타서 마시면 될 일이지~ 할 텐데.
하지만 블로그의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싶다.
솔직히 말해서 사진이라는 시각 매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지저분한 생활 배경은 잘라내고 싶고
가능하면 좀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맘이 생긴다.
좀더 좋은 카메라로 찍고 싶은 마음이나
피사체를 돋보이는 배경 속에 찍고 싶은 사람이 나 한사람뿐일까.
한때 아키라햏처럼 배경판 놓고 찌룽이 찍고 싶다고 한 동생이나
밑에 티매트 깔고 차 사진 찍는 나나... -_-;;

밑에 손수건 한 장이라도 깔고 찍는 쪽이
두고두고 사진 볼 때 즐겁다면
역시 쌩쑈는 하고 볼 일이라는 게 내 결론이라 이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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