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햏의 깜돌이가 오늘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깜돌이는 아키라햏이 2002년에 입양해서 길러온 고양이로
찌룽이와 비슷한 시기에 디시에서 활동하며 얼굴을 보아왔기 때문인지
소식을 듣고 가슴이 탁 막히는 듯했다.

당시 우리는 아키라햏이 배수관에 삼줄 감아놓은 걸 보고
찌룽이한테도 그렇게 해주자며 배수관에 삼줄을 감아놓기도 했고,
회사 후배가 중개하던 일이 꼬여서이긴 했지만
깜돌이와 토토에게 캣타워를 선물하면서 식사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추운 12월이었던 것만 같다.

찌룽이와 비슷한 나이의 아가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에서 커다란 쇳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다.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토토를 잃었을 때의 그 슬픔이 아직 한 번 더 남아 있노라고 알려준다.
각오하지만,
이런 건 각오한다고 아픔이 덜한 것도 상실감이 덜한 것도 아니다.

토토를 잃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블랙홀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블랙홀은 참으로 이상해서
온 세상을 빨아들여도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처럼 극도로 텅빈 동시에
심장을 토해내도 풀리지 않을 것처럼 답답하게 꽉 찬 느낌이었다.
죽기 전에 미처 해주지 못한 말
"토토, 사랑해"를 수십 번 되뇌고 또 되뇌어도
그 소리는 공기 중에서 순식간에 부서져버렸다.
유행가를 불러도 눈물이 났고,
슬픈 노래를 들어도 눈물이 났다.
영화를 봐도 죽움이 상기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죽음은 언제나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끊임없는 상실감을 되뇌이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찌룽이에게 더 많은 뽀뽀를 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삶 속에서 죽음을 연상하며 괴로워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타 들어가는 밧줄에 매달린 사람처럼 찌룽이에게 집착한다.

많이 아프다.
동물을 향한 내 사랑은 항상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시리다.
미워할 시간이, 짜증낼 시간이 어디 있는지....
그들은 너무 짧게 곁에 머물다 간다.
죽음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을 1초, 1초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더 오래, 더 오래,
기네스북에 최장수 고양이로 기록될 수 있을 만큼 오래 내 곁에 머물다 가주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렇게 기도한다.

깜돌아, 너와 함께했던 이는 평생토록 마음속에 너를 짊어지고 살아갈 거야.
부디 그 마음 고이 받아 행복한 곳으로 가렴.
이제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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