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융건릉과 수원성을 다녀오다_ 화성 행궁 편

우여곡절 끝에 범계역에서 다시 수원역으로 되돌아오니
시간은 이미 4시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
늦게라도 수원성을 보고 가자며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수원성(화성) 행궁 앞.

행궁은 정조가 수원성에 행차할 때 머무르던 궁이다.
본래 서울을 수원으로 옮기고 싶었던 만큼
보다 거대한 왕궁이 되었을 텐데
그 포부가 좌절되면서 행궁으로만 남았다.

행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
'신풍루'라고 적혀 있다.
1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받으면 이리로 들어가게 되는데...

아니, 저분들은?
검표를 하시는 분들의 복장이 재밌다.
흠흠...
마치 관문을 통과하는 것 같은 기분??
복장 탓인지 검표하시는 분들도 여유롭고 느긋하시다.

들어가면 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거중기.
다산 정약용이 만든 기중기로
이를 이용해서 훨씬 빠르고 견고하게 수원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아니, 저분들은???
이곳에서 대장금 촬영이 있었구나.. 짐작케 했다.
수뎅이더러 "찍어줄까?" 했더니 거부했다.^^;;

고즈넉해 보이는 풍경.
하지만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서 찍느라 힘들었다. ㅎㅎㅎ;;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보이는 나무도 눈에 띄고.
신기하게 바로 행궁 옆에 학교가 있었는데,
학교 정문에 "충효당'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어서 "뭐 하는 덴가.." 했다능.. -_-;;

행궁도 궁이라 겹겹이 몇번씩 통과해야 하는 문이 여러 개가 있었다.
이번엔 '좌익문'을 지났다.

사방이 네모난 구조의 이런 마당(?)이 몇 번씩 나온다.
아담하면서도 고즈넉한 풍취가 참 마음에 든다.

예의 또다시 문.. ^^;;
전서로 쓰여 있어서 해독에 잠시 곤란을 겪어 '신양문'인가 '갑양문'인가 한참 헤맸다.
알고 보니 '중양문'이었다. -_-;;
(저게 어떻게 가운데 중자란 말이여..)

아무튼 이때부터 행궁의 현판 글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맨 위의 '신풍루'나 '좌익문'을 살펴보면 글씨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양문을 지나니 이번엔 이런 색다른 곳이 눈에 띄었다.
무얼 체험한다는 것일까?

바로 요런 것이다.
2000원을 주고 엽전 1닢으로 바꾸어서 여러가지 행사를 체험하는 것인 듯.
행사 내용을 보니 재미있다.

1. 왕과 왕비 역할 해보기 - 1닢
2. 대장금 체험 - 1닢
3. 갑주 착용 - 1닢
4. 궁중 상화 만들기 - 1닢
5. 오미자차 마시기 - 1닢
6. 궁중 한과 만들어 먹기 - 1닢
7. 한지를 떠서 탁본하기 - 1닢
8. 도자기 만들기 - 1닢
9. 혁필 체험 - 1닢

궁중 상화란, 궁중에서 연회상에 장식하던 종이로 만든 꽃인 듯.
혁필은 어렸을 때엔 자주 봤는데 최근에는 본 적이 거의 없다.
길에서 색색깔의 물감을 묻힌 붓으로 글씨인 것 같으면 그림이고, 그림인 것 같으면 글씨였던
신기한 그림을 그리던 아저씨를 넋을 잃고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행사가 2천원이면 저렴하면서도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하나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패쑤.. -_-;;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기괴한 형체를 드러낸 저 나무...
멋지다고 찍었지만
밤에 담 위로 솟아오른 저 형상을 보면 겁이 좀 날지도 모르겠네...ㅎㅎㅎ;

한쪽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모델들이 치맛자락을 치켜들며 자태를 뽐내고.. ^^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복은 자태나 맵시가 어찌나 이쁜지~
이런 한복을 주위에서 보기 힘들다는 게 사실 안타깝기는 하다.

봉수당에 꾸며진 정조 대왕의 처소.
(보라! 이 굵고 힘찬 현판 글씨~!! 또 다른 글씨다.)

정조 대왕의 인물 모형을 떠서 처소를 꾸며놓았다.
본래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을 접견하고 쉬기도 했으나
편의상 이곳 봉수당에 꾸민 것이라고 한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비스듬히 찍을 수밖에 없었지만
뒤로 보이는 저 병풍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주부자시의도로,
주자의 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정조가 매우 극찬하여 아꼈다고 한다.
지금 한창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보고 있는 터라
정조와 단원 김홍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왼쪽에는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때 모습을 연출해서 꾸민 것으로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가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올리고 있다.

진찬연..라고 하니 뭔가 색다른 것 같지만 61살에 벌이는 회갑 잔치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무사히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린 덕에
비록 대비는 아닐지언정 왕의 어머니로서 회갑연상을 받았던 혜경궁 홍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때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포장되었던 그녀의 삶이
지금은 또다른 시각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니
역사는 하나인데 해석은 난무한다.

위의 것은 향로처럼 보이는데 밑의 것은 모르겠다.
가끔 저런 것들이 건물 주위에 놓여 있었다.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저기에 마구 쓰레기를 버렸더라..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 쓰레기가 없어서 내심 안도햇다.

건물의 뒤로 가니 이런 고즈넉한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응?)

날아갈 것 같은 느낌.
하나하나 단청의 색을 메우던 사람들 생각이 나는 것도
역시 <바람의 화원> 때문인가?? ㅎㅎㅎ;;

이게 무척 궁금했다.
연기 빼는 굴뚝처럼 생긴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물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거였다.
게다가 단단하고 너무나 정교하게 보이는 구조물이 주는 낯선 이질감.
마치 현대의 축조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를 당혹케 했다.
하지만 화성이 정약용이 서양식 건축법을 도입해서 지은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별반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다시 또 발걸음을 옮기니 이번엔 '노래당'이라고 쓰인 곳이 나온다.
각종 연회나 행사 중에 잠시 쉬기 위해 지은 곳으로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수원에 내려와 머물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마당 한쪽에 이런 것이??
왠 부뚜막???
이것 때문에 잠시 야외 주방인가 착각도 했엇는데
아무래도 대장금 촬영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

노래당에서 돌아나오면
'낙남헌'이라고 적힌 건물이 시원스레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엄청나게 굵은 매직으로 휘갈겨 쓴 것 같은 필체.
붓글씨를 좋아해서 한때 서예를 배우려다가
도저히 붓을 내맘대로 못 다루겠기에 그대로 포기해버린 나.
아~ 부러워요~!!

낙남헌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아니.. 십자가가?? @@
야트막한 기와지붕들 위로 솟아오른 첨탑이 갑자기 나를 21세기로 확 끌고 왔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철망 너머로 훤히 보이는 학교 건물.
건축 허가를 낼 때 좀더 세심하게 신경 쓸 수는 없었던 걸까?

행궁 안을 곳곳마다 눈에 띄는 길 안내 표지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화령전" 가는 길을 가리키는 거였다.
도대체 화령전이 어떤 곳이기에 여기저기 방향 표지가 붙어 있는 걸까 하면서
그리도 중요한 곳이라면 안 가볼 수 없지..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런 기나긴 돌계단 위로 올라가라는 표지판의 말씀.
아니..이런 곳에요???
네.. 네.. 올라갈게요.. ^^;;

가는 길에 예쁘게 핀 국화꽃도 찍어주고.

길 따라 이어진 도랑도 찍어주고.. ^^;;

담 너머 보이는 저 건물이 화령전인 듯.
교회가 서 있던 곳으로 보이던 지붕이 바로 화령전 지붕이었다.
화령전이란 알고 보니 정조의 어진(초상화)를 봉안한 건물이란다.
<바람의 화원> 덕분에 역시 '어진'이란 용어도 친숙하다. ㅎㅎㅎ

화령전으로 들어가는 문 바로 앞에는 요런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동글동글한 힢들이 마치 꽃잎처럼 돌려나서 너무 예뻤는데 이름이 궁금...
일단 사진만 찍었다.

들어가기 전에 찍은 주위의 담벼락길.
옛길의 정취가 느껴지는 참으로 멋진 길이었다.

이윽고 화령전 문 안으로 들어서니 이런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무슨 건물인고?? 했더니 '전사청'이란다.
즉, 화령전에서 있을 각종 제향에 관한 준비를 점검하는 곳이며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기도 하는 곳이다.

전사청의 반대편 모습.

이건 제정, 또는 어정이라고 한다.
제례에 사용될 물을 긷는 우물인 것.
저기 보이는 글씨는.. "수리 중이니 마시지 마시오"였던 듯..ㅎㅎ;

옆으로 난 문을 통화하니 화령전 건물이 나왔다.
건물 안쪽에 밝게 빛나는 정조의 어진이 보인다.
이때 내 눈길을 끈 것은 화령전으로 이어지는 길.
능에서는 어도와 신도, 두 개의 길이 잇었는데
이곳에는 높은 중앙의 길과 낮은 좌우의 길 세 개로 나뉘어져 있다. 뭘까??

종조의 어진.
정조의 어진은 전부 세 차례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곳 화령전에 보관한 것은 융복(군복)을 입은 모습이라고 한다.
사도세자의 아들답게 무예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뒤로 돌아드니 뭔가가 눈에 들어온다.

오~~ 이것은??
혹시나 생전에 정조대왕이 타고 다니던 가마인가?? 했으나..
실은 그게 아니라, 정조의 어진을 이곳으로 운반해온 가마라고.
딱 한번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없어진 걸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
뭐 임금님의 초상화니깐. ^^;;

죽은 이의 어진이 모셔진 곳이기 때문인지
화려한 단청은 보이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색이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춘원의 쳥평사 가는 길에도 이런 곳을 본 듯한 기억이.. (가물가물.. 한심..;;)

그리고 이곳은 풍화당.
제향이 있을 때
제를 올릴 사람이 미리 와서 머무는 제실이라고 한다.

풍화당을 끝으로 행궁 관람을 마치고
부랴부랴 수원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뎅이가 그리도 타보고 싶어 했던 관람열차는 이미 시간이 지나서 탈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나오는데
아직도 촬영 중인 한복 입은 모델들.
기다리는 동안 치맛자락을 마구 들추며 호들갑을 떨다가
한 아줌마에게 속옷과 신발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고서
어떻게 한복의 멋이 우러나느냐며 호된 질책을 들었다.
구두는 너무했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살짝 가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옛날 가정 선생한테 혼나던 고딩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가..ㅎㅎ;

이제 다시 수원성으로 직행.
밥 먹을 틈도 없는 강행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