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제까지 드립커피에는 별다른 호기심을 못 느끼고 살았었다.
십수 년 전에 무슨 사은품으로 드립퍼랑 드립서버가 딸려오고 나서
원두를 사서 드립을 해본 결과
맛도 없고 기다리느라 속터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은 뒤로
"이거 마시느니 차라리 좋아하는 맥심 커피를 마시겠어!" 라고 외쳤던 경험 때문이다.

이후론 카푸치노에 반해 열심히 카푸치노만 해먹고 있었는데
최근 갑자기 드립커피가 모락모락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아마도 원인이 된 건 두 가지.
동생이 사준 커피북에 핸드드립하는 법이 소개된 걸 보고
"아, 예전에 내가 무식하게 정말 드립을 했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은 것이 하나요,
동생이 부암동 커피집에 갔는데
동생 친구인 림스양이 드립커피를 마시고는 정말 맛있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탓이 둘이다.

도대체 제대로 된 드립커피는 어떤 맛일까?
본래 호기심형으로 타고난 지라 궁금한 건 잊혀지지 않다 보니
결국 집에서 두어 번 드립을 시도했다.
다행히 티팟으로 쓸 수도 있겠다고 장만해둔 드립퍼 커피팟 세트가 있어서
핸드드립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는 이미 갖추어져 있던 터라
더 시도의 욕구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
물줄기가 가늘게 나오는 드립용 포트를 써야 한다는데
집에 있는 물 끓이는 주전자로 들이부어서인지 도대체가 책처럼 되지를 않는다.. ㅠ.ㅠ



요로콤 생긴 예쁜 커피팟과 드립퍼가 무색하다. ^^;;;



사실 요넘넘 예쁜 글씨 로고와
둥글고도 친근감 넘치는 부드러운 팟의 자태에 반한 것이었지만



어여쁜 드립퍼까지 사용하게 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드립퍼 넘 무겁다..고나 할까
예전에 사은품으로 딸려와서 쓴 건 플라스틱이서 무척 가벼웠는데...
책을 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저렇게 위아래로 세로줄이 쭉쭉 쳐져 있고 구멍이 세 개 뚫린 건 칼리타 식이라고 한다.
커피가 빨리 추출되기 때문에 마일드한 커피에 적합하다는데
뭐랄까... 시도도 해보기 전에 아메리카노 같을까 미리 걱정부터 하고
결국 한번에 진하게 마시자며 스트롱한 커피를 내리기로 결정....-_-;;



결국 커피를 힘겹게 추출하긴 했으나...
음..... 생각보다 무지하게 진해 보이는 커피가 만들어졌다.
책에 적힌 30g 원두를 다 쓰면 너무 진할 것 같아서
대략 25g 정도를 쓰고 아빠 것까지 두 잔을 추출하리라 다짐한 건데
드립을 기다리다 지겨워서 결국 도중에 멈추고 부었더니 저렇게 한 잔 분량밖에 안 나온 것...OTL
(참고로 저 잔 역시 애프터눈티의 커피잔.
아끼느라 거의 안 쓰는데 동생도 예쁘다고 했던 잔임)



꼭.... 한약 같다.
아니지.. 한약보다 더 진해 보인다. 정말 정말 까매...ㅠ.ㅠ
이번이 세 번째로 드립을 해본 건데
오늘이 가장 최악이었던 듯.
첫날은 향이라도 죽여줬는데 오늘은 향 이전에 너무 썼다.
설탕을 두 스푼 넣었는데도 오래오래 한약을 먹은 듯한 느낌뿐..ㅎㄷㄷㄷㄷ

아무리 물줄기를 가늘게 해보려 해도 한꺼번에 와장창 쏟아지는 물줄기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
게다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를 참고 기다리기엔 아무래도 내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다.
동생 말대로 역시 카푸치노만 해먹어야 하는 운명이련가.
그런데 도대체 환상의 핸드드립 커피맛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지.
수뎅이와 한번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러 가야만 알 것 같다.

뱀발> 근데 신기한 건 커피 갈고... 티팟 데우고.... 
         커피 기다리는 게 한편으로는 재밌다는 사실.
         아직은 맛보는 즐거움보다 뭔가를 시도해보는 자체를 즐기는 게 맞는 것 같다. ^^


아무리 봐도 정말 정말 찐해 보인다..ㅋㅋ
이건 독약이었어..훗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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