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전을 다녀오다

Posted 2007. 12. 20. 17:28, Filed under: 끄적끄적 후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를 들라고 하면 주저없이 떠오르는 화가 반 고흐.
정상과 비정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듯
그가 뿜어낸 빛처럼 노랗게 노랗게 산화한 화가.

당연히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며 관람을 포기하다시피했었는데
어찌어찌 홍여사랑 급작스럽게 날짜를 잡아
그저께 시립미술관을 다녀왔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살하기 얼마 전에 팔린 단 한 점의 그림이
(그것도 지금 돈 십만 원 정도의 헐값에)
살아있을 당시 팔려나간 그림의 전부였다니........

매일매일 혼을 불살라 그림을 그리지만
한 점도 팔리지 않는다는 건 어떤 지옥일까.
십 년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헤매고
다시 십 년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보내다
결국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했다.....
죽는 것마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말이
"나는 어쩌면 매사에 이렇게 어설플까.
사는 것도 어설프더니
이제는 죽는 것마저 어설프구나..." 였다고 한다.

기대했던 그림은 많지 않아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의 비극적인 삶에 눈물이 났다.
그의 영혼이 오늘의 영광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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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는 반 고흐의 그림을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장소별로 구분하여 나누고 있었다.
기억 나는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1. 네덜란드 시기 (1881년 ~18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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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슬픔>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화가의 길을 걷던 시절에 만난 매춘부 여인 시엔을 그린 작품이란다.
드로잉 습작품이지만
선의 연출만으로도 여인의 지친 삶의 애환이 전해지는 것 같다.
고흐의 일생에서 1년 6개월을 함께 살면서
고흐가 유일하게 결혼하려고 했던 여인이라고 하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만일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었다면
고흐의 인생도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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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

유화를 완성하기 전에 스케치를 바탕으로 석판화를 완성했는데
웹에서는 석판화는 찾기가 힘들어서.. -_-;;
이 역시 네덜란드 시기의 작품으로 고흐의 초기작품이다.
고흐의 스타일은 찾기 어렵고
어딘가 렘브란트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산다는 건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딱히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닌 것 같은
무표정한 모습과 기계적인 움직임 속에 일상의 단면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하긴......
웃는 나도
우는 나도
비일상인지도 모르지...
정말 나의 참모습은 무표정하게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단조로운 표정 속에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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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감자 캐는 두 여자 농부> 1885

사실 도록을 사지 않아서 이 작품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헷갈린다.
전시작품을 보고 난 뒤에 도록을 보면
도록이랑 직접 본 그림의 인상이 너무 달라서
구입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감자 캐는 여인 그림이 이것 말고도 또 있던데
어느 건지 헷갈림.... -_-;

어쨌든 고흐는 밀레를 좋아했다고 한다.
밀레의 그림에서 농촌과 농부들의 노동의 숭고함과 자연의 생명력을 느낀 것이리라.
(나도 밀레의 그림을 좋아하니까)
그런데도 고흐의 그림이
밀레의 농촌 풍경보다도 더 고단함과 어두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그가 밀레보다 정신적으로 더 쫓기고 있었고
삶에 더 지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성직자 집안이었고 그 역시 한때 성직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억압된 심리의 영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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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고흐의 네덜란드 시기작품..



2. 파리 시기 (1886년 ~1888년)


파리로 건너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면서부터
고흐의 그림은 변하기 시작했다.
터치는 짧고 간결해지면서 색조도 밝아진다.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선보다는 색의 실험에 치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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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1887

사실 정물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고흐가 이런 것도 다 그렸네~ 하면서 무심코 떠들면서 지나쳤는데
당시 화가들 사이에선 압생트라는 술이 엄청난 인기였다고 하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보게 된 그림.
80도가 넘는 도수라 물에 희석해서 마시는데
희석하면 에메랄드 빛이 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한번 이 술을 마시면 중독성이 있는 것처럼 다시 찾아서
조사해보니 실제로 마약성분이 검출되어
이후 금지되었다는 술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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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순간 너무 예뻐서 한참 동안 들여다본 그림.
붉고 희고 푸른 색상이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부 세 개의 꽃그림이 나란히 전시실에 걸려 있었는데
제일 인상적인 화병이었다.
이런 그림을 하나 걸어놓고 싶다~
아쉬운 마음에 엽서를 사오는 것으로 만족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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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장미와 모란>

양귀비를 꽂은 화병 그림보다 먼저 보게 되는 작품인데..
정말 아름다운 꽃송이의 우아한 빛깔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그림이었다.
이와 비슷한 풍의 그림을 어디선가 본 듯한데
이 무렵의 고흐는 인상파 화가들의 많은 그림을 자기 안으로 내면화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오기까지의 연습 과정에 해당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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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이 많다고 하는데
그 많은 자화상 중에 우리나라에 온 것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내가 많이 보아오던 자화상은 아니지만
언제나 보던 고흐의 모습과 같았다.
모든 자화상이 한눈에 고흐임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렸으니
정말로 고흐를 만나면 저 그림처럼 생겨서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
야윈 볼과
텁수룩한 수염, 그리고 눈썹,
그리고 툭 불거져나온 광대뼈와 눈두덩의 뼈...
고집스런 눈빛.
항상 보게 되는 고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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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드 프레르의 거리>

고흐의 그림답다는 분위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인상파 화가의 그림답다는 분위기는 지니고 있다.
분홍빛 톤의 거리가 어딘지 포근하게 느껴지는 겨울의 거리 같달까.



3 아를르 시기 (1888 ~1889년)


고흐의 색채 실험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고흐의 그림은 낯익고 친숙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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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오르셰 미술관전을 보러 갔을 때에도 바다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 바다 그림에 마음이 끌렸다.
회청색의 바다,
어딘지 메마른 분위기의 바다를 생기있게 하는 건
정말 눈앞에서 부서지고 있는 것 같은 저 파도 탓인 거겠지.
바다는 계절과 장소에 따라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는데
고흐가 바라보던 바다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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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너무 유명한 작품인데
이것이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고흐가 자기 스타일로 그린 모작이었다니.. ^^;
언제나 저 농부의 모습만 인상에 남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상하게 저 낮게 지평선에 걸린 태양에 눈이 끌렸다.
점점이 점점이 고흐다운 붓터치의 바다다..
그리고 온갖 색으로 이루어진 색채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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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

사실 꽤 근엄한 자세이지만
산타할아버지처럼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델료가 없었던 고흐의 초상화 연습대상이 자주 되어주곤 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이 우편배달부의 초상화가가 꽤 많다.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바로 저 뒷배경~
인물 주위에 날아다니는 꽃송이라니...
보색 대비에 요즘 유행하는 중국풍 장롱 무늬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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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포도>

포도라기보다는 마치 곶감 같았던 색채~
우리가 먹는 포도와는 모양이 조금 다른데
어쨌든 포도의 청량감은 별로 못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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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노란 집>

드디어
고흐답다는 그림이다~
저 시퍼런 하늘 빛깔과
노란색의 강렬한 대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청색의 보색 대비이다..... ㅠ.ㅠ
그래서 <오베르 성당> 그림도 좋아하는 걸까??
이 시기의 고흐는 고갱과 함께 살면서 이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노랑색은 이상주의의 색이자 정신병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한데
고흐가 유난히 노랑색을 많이 썼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이론과 상관없이 그의 이런 풍 그림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방>은 전시목록에 없어서 좀 아쉬었지만
그 대신 <노란 집>으로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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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벌러덩 누운 게>

누가 저런 게를 그릴 생각을 했을까..
뒤집힌 게의 그림을 보면서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그림.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진짜 보색 대비 작품이다. ^^;



4.생레미 시기 (1889 ~1890년)


걸음, 한 걸음씩
내가 아는 고흐의 그림에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미쳐가고 있었던 건가?
이 시기는 그가 자진해서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그림을 그린 시기다.
고흐다운 색채의 구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특유의 미칠 듯한 곡선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정말 정신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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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전시에 대해 만족감을 갖기로 했다.
고딩 시절 교과서에 <가뭄>에 대해 글이 실린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필에 왜 이 타들어갈 것 같은 고흐의 삼나무 그림이 실려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저 타는 듯한 태양과
불꽃처럼 피어오를 듯한 삼나무의 기운이
이글거리는 가뭄 속의 열기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당시엔 흑백 사진이라 색감은 알지 못했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이 뇌리에 박혀 오늘날까지 고흐를 잊지 못하게 된 건지도....
이후로 이중섭의 <황소>도 좋아하게 되었다. ㅎㅎ;
내멋대로 <미칠 듯한 삼나무>라고 부르는 이 그림은
고흐의 많은 삼나무 그림 중에서도 단연 가장 좋아하는 삼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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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아이리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그림.
몰랐는데 홍 여사 왈,
"사람들이 <아이리스> 앞에만 몰려서 관람 진행이 안 된다"고 한단다.
알고보니 이 그림이 해외 나들이한 게 이번 전시회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 화제가 되었던 거다. -_-;;

하지만 이 그림은 처음 볼 때보다
다시 보고 되새길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고흐가 비로소 자신다운 그림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도슨트가 물었다.
"이 그림에서 이상한 점이 뭘까요?"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정답은 그림자가 없다는 거라나?? ^^
그러고보니 고흐의 그림이 만화적인 건 그 때문인가 보다.
어딘가 평면적이고 과장되어 보이는 그림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한 거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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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올리브 따는 인부가 있는 올리브 과수원>

전시장에서 올리브 나무 그림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그림은 딱히 내 눈길을 끌지 못했다.
색의 경계가 불분명해서인가..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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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채석장 가는 길>

나무들이 잡아먹을 것처럼 꿈틀댄다.
고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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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생레미병원의 정원>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다.
입원 후 한동안 안정기를 가졌다는데
그래서인지 색의 향연이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보면 더 크고 멋진 그림인데
화면에선 이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구나..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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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착한 사마리아인>

실제론 <아이리스> 그림 옆에 걸려 있었는데
순서가 뒤죽박죽.. ㅎㅎ
이 무렵의 고흐는 다시 예전 생활로의 회귀를 원했었다고 한다.
한때 성직자의 길을 걸었던 그가 성경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성경 그림조차도 참으로 고흐답구나.. 싶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전시장에서 실제 그림을 접했을 때엔
고흐 그림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으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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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피예타>

이 역시 성경에 관한 그림.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예수나 마리아가 고흐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어딘가 고흐를 닮았네...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거겠지.



5 오베르 시기 (1890년 5월 ~ 7월)



고흐가 인생의 막을 내린 오베르.
내가 <오베르 성당>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이곳에서
고흐는 37살의 짧고 강렬했던 삶을 마쳤다.
남프랑스에서의 꿈을 접고 다시 북으로 회귀한 고흐는
이곳에서 가셰 박사의 보호를 받으며 70일 동안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루에 한 점도 더 남긴 셈이니
생의 마지막 혼을 전부 불살라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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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꽃이 핀 밤나무?

미친 듯이 그림만 그린 오베르 시기이건만
들여온 그림은 많지 않았다.
이 시기의 그의 그림은
선이 더 거칠어지고 대담해지고 있다는 걸 나같은 사람도 한눈에 알아보겠네...
시간이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까?
무엇엔가 쫓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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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건 사실 이번 전시 목록에 있던 그림이 아닌데
스크린에서, 그리고 기념품 목록에서 여러 번 보고
새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어서... ^^;
고흐가 자살하기 얼마 전에 그린
그의 마지막 그림이다.
저 까마귀 떼가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저 푸른 하늘이 어딘지 사신이 내려오기 직전의 하늘처럼 어두워서
저 노란 틀판이 풍요보다는 황량한 느낌이 들어서  슬퍼지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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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의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없는 절망 속에 살았을 그의 삶이 안타까워 새삼 슬펐던 전시회.
전시회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오는 길에 엽서 몇 장과
고흐의 <아이리스>가 인쇄된 머그잔을 하나 사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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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패턴의 잔이 있었는데
그중 <아이리스>가 가장 예뻤다.
이 잔을 보면서 이번 전시회를 더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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