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람도 맞춰놓지 않은 채 단잠에 곯아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후닥닥 일어나 허둥지둥 사무실로 달려갔다.
지각한 주제에 인스턴트 커피까지 타서 강의하는 도중에 들어가니
오늘따라 강의하는 샘의 목소리가 유난히 경건하고 엄숙했다.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어떤 신념으로 사는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등
자신의 생활태도와 소신을 시종일관 경건한 자세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정말 강의실 내 분위기는 숙연 그 자체.
옆자리에 앉은 샘은 경도된 눈빛으로 열심히 메모를 하며 듣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 자리가 답답하고 싫어서 박차고 나오고 싶은 거였다.
그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학창시절처럼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혼잣말을 쓰고 있었다.

그 열혈 분위기 속에서 어쩐지 나만 겉도는 느낌,
학교 다닐 때 모두가 열공하고 있는 교실 속에서
나 혼자 연습장에 낙서하던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나라는 인간은 그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하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조직 속에서 언제나 불편해하는 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옳다고 외칠 때마다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나.
어딘지 남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길 거부하는 이 버릇 때문에
얼마나 인생을 허비하고 심지어 따가운 눈초리까지 받았는데....
학창 시절엔 무수히 농땡이질로 시간을 흘려 보냈고,
친구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가면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못해
그날 밤엔 악몽까지 꾸어야 했다.
나더러 지옥의 끓는 가마솥에 떨어질 거라는 협박까지 하던 친구에게는
고3 내내 싸늘한 냉대와 무시를 받기까지 했다.
농성이 곧 대학 생활이라고 믿었던 대학 친구들 틈에선
"비싼 수업료 내고 왜 수업을 안 듣느냐"는 소리를 해서 회색분자라는 눈길도 받았고,
지금도 집 안에서 엄마 아빠가 같은 목소리를 내면 꼭 반대에 서서 꿀밤을 맞고 있다. -_-;;

그렇다고 열혈 반골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어째서 이토록 한 목소리로 색깔이 규정되어지는 건 싫어하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부모님께 착하고 반듯한 딸이 아니었고
학교에서 모범생이 아니었듯이
어느 조직엘 가나 나는 바람직한 직원은 못 될 것 같다.

강의하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안 봅니다. 내 취미 하나 줄여서 일을 할 수 있다면 드라마 같은 걸 왜 봅니까?
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늦은 밤까지 일합니다."
"회원이 하나 그만두면 저 때문에 마음 아프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회사의 터전이 나로 인해 무너지는 건 괴롭습니다."

난 이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말에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대신 어이없어지는 내 자신을 보았고,
숙연한 주위 위기를 또 보았다.
이런 걸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건 설마 나뿐은 아닌 거겠지?
라고 믿고 싶다.

친구가 말했다.
"넌 갈수록 더 시니컬해지는 것 같아."
친구는 틀렸다.
갈수록 시니컬한 게 아니라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이랬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고2때부터.
그리고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타로 위장하고 자기를 속이기보다
이기를 인정하고 본질을 바라보며 솔직하게 사는 게 더 나은 거라고
예나지금이나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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