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래어표기법이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봇물 터지듯 한다. 지난 10월 22일에는 전국 한자교육추진연합회가 ‘한자 지명(地名) 인명(人名) 원음주의(原音主義) 표기, 그대로 둘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리고 11월 2일에는 한글문화연대가 ‘바람직한 외래어 정책 수립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이 두 토론회의 결론은 다 똑같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잘못되었으니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 혼용파 단체와 한글 전용파 단체, 양쪽이 통일된 의견을 보였으니 이는 우리 국어학계의 통일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은 “문제가 제기된다고 바로 개정하면 국민의 언어생활에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개정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표기법을 개정한다고 혼란스러워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잘못된 외래어표기법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오늘날 외래어표기법이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늘어나는 중국 관련 외래어 표기와 발음이 정보 전달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000년간 중국, 일본 관련 고유명사를 모두 한자로 적고 우리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고 말해 왔다. 그런데 1989년부터 갑자기 중국 관련 외래어를 중국의 ‘현지 원음(原音)’으로 적도록 하였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天安門(천안문)’과 ‘톈안먼’ 중 어느 낱말을 잘 이해할까? ‘成龍(성룡)’과 ‘청룽’, ‘宋美齡(송미령)’과 ‘쑹메링’, ‘北市場(북시장)’과 ‘베이스창’ 중 어느 것을 잘 이해할까?

게다가 신해혁명(1911년) 이전의 중국 고유명사는 종래의 한국 한자음으로 적고 그 이후의 것은 중국어로 적으라는 규정은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중국의 신해혁명 때 무슨 언어적 변화가, 그것도 급격하게 벌어졌는가? 그런 일 없다. 어떻게 우리말의 규칙을 외국의 역사를 기준으로 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과연 이렇게 중국 현지 발음으로 고유명사를 적어서 무엇을 얻는가? 전혀 없다. 중국인은 4성(四聲)을 구별 못하는 이런 중국어 흉내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엉터리 중국어는 중국인도, 한국인도 알아먹지 못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모두 자국어 발음을 중심으로 ‘외래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중국은 한국의 盧武鉉은 [루우 ]으로, 大田(대전)은 ‘다톈’으로, 三星은 [싼씽]으로, 現代汽車(현대자동차)는 [쌘따이치처]로 발음한다. 우리나라 국호는 ‘大韓民國[대ː한민국]’이지만 전 지구상에서 그렇게 불러주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중국은 [한구어]로, 일본은 [강꼬꾸]로 부른다. 이러니 ‘외래어’를 현지 원음 위주로 적어야 한다는 국립국어원의 규정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외래어’는 우리 한국인끼리 쓰는 말이므로 우리끼리 잘 통하는 게 중요하다. ‘외국어’의 ‘현지 원음’을 그대로 가져오면 한국인은 오히려 불편하다. 한국어에 가깝게 발음을 바꿔야 편하다. 그래서 중국의 ‘자장미엔’이 우리나라에서는 ‘짜장면’이 되었다. ‘자장미엔’은 ‘외국어’고, ‘외래어’로는 ‘짜장면’이 옳다. ‘자장면’을 강요하는 국립국어원은 ‘외국어’와 ‘외래어’도 구별 못하고 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외국어표기법’인 것이다. 근본부터 잘못된 법이다.

외국의 발음을 기준으로 삼는 나라는 지구상에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자주 독립국가로서 ‘언어 주권’을 가진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립국어원은 더 이상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기 바란다.

- 김창진 초당대 교수·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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