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띠냥이's blog : 운명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지금 이순간 마주한 너와 나...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행] 춘천을 다녀오다

지난 5월 3일 토요일.
은경 선배와 후배 송반장과 같이 생전처음 춘천엘 다녀왔다.
친구와 서삼릉 갔다온 포스팅이 너무 힘들어서
춘천 사진은 한동안 포스팅할 엄두도 내지 못했음.
아아....
이번엔 말은 가능한 생략하고
사진만 올려야지..... 하면서 포스팅에 들어간다...... ㅎㅎㅎ;


               
1. 청평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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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서 경춘선 타고 두 시간 만에 남춘천역에 도착.
세 사람 중 아무도 사전 준비를 해온 사람이 없어서 이후로 막막....;;;
안내판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바보같이 택시기사의 낚싯밥이 되었다. -_-;;

춘천닭갈비 먹을 거냐는 낚싯밥에 걸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다가
행선지는 정했느냐는 말에 "아니요~"
그럼 청평사로 가라~~고 하는 기사.
동생이 청평사 좋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순순히 택시에 올랐다.

기사는 명동에 가서 닭갈비 먹지 말라며
요즘 <겨울나그네>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와서 맛이 변질됐다고 충고까지 해줬다.
그러면서 자기가 맛있는 데 소개해준다고 선심공세까지...
(이때만 해도 아무 의심이 없었음)

청평호 선착장 있는 곳까지의 택시요금이 무려 17000원.
사실 택시로 20분 넘게 달렸으니 요금 자체가 바가지인 건 아닌데,
그럼에도 막상 돈 낼 때엔 왠지 당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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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로 가기 위한 배 안에서 찍은 청평호수의 모습.
1인 왕복요금이 5000원이었다.
어쩐지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배 타고....(은근히 춘천이 교통비가 많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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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선착장에서 내렸다.
본격적으로 청평사 가는 길.
오전 7시 기차를 탔더니 이제사 해가 제대로 비추기 시작한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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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이 멋지게 들어선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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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물이 맑으니 찍으라고 성화인 후배 땜에 찍은 사진.
저걸 보고 "폭포다!" 하고 외친 후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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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긴 더 큰 폭포가 있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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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오르니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공주가 남자 같아...."  하고 쓸데없는 소리나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야말로 계속 걸었다.....;;;

걷는데, 난데없이 산길을 가로질러 나타난 60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등장해서 말을 건넨다.
"어디서들 오셨어요?"
"서울이요."
"그 밑 길로 오신 거예요?"
"네"
"요금 안 받아요?"
"냈는데요....."
"얼마씩?"
"1인당 1300원이요."
그러자 이 아저씨 득의양양 웃으며
"어이쿠, 1300원씩이나... 이리로 오면 돈 안 내도 되는데...."  -_-+
그랬던 거다.
다들 입산금지 표시를 무시하고 열심히 그 길로 들어간 이유는
산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청평사 입장요금을 안 내기 위해서였던 거다.... ;;;;

그런데 이 아저씨, "춘천닭갈비 먹으려면 명동으로 가야 해." 하는 게 아닌가.
"네? 아까 택시기사는 거기 맛이 다 변질됐다고 **로 가라던데요?"
"거짓말이야. 이쪽에 잇는 건 다 맛없어. 엉터리야."
아니....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다가
이 아저씨는 춘천 토박이니
결국 그 택시기사가 삐끼라는 데 중지를 모았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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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를 떼어내고 우리끼리 좀 걷다 보니
이번엔 진짜 폭포가 있었다. 폭포 이름은 구성폭포.
간만에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무지 시원~
발이 계곡에 담근 수박이 될 지경이었다.
서로 "발이 이상하게 생겼다"며 흉을 보다가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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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 푸른 숲길을 한참 걸어갔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있어서 가는 내내 연등이 길안내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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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곳이 청평사가 있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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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반대쪽에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도 설명이 있었는데,
이 연못은 평생을 청평사에 은거하면서 지낸 이자현이 만든 정원에 속하는 것이란다.
이미 길이 나고 음식점들이 중간중간 들어선 곳에서
정원의 정취는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뜻밖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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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를 떠나지 않고 왔다갔다하던 다람쥐. 왕귀여움.
뭔가 먹을 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ㅜ.ㅜ
나이가 드니 가방 속에 과자 봉지 하나 안 갖고 다니네...



2. 청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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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청평사에 도착.
이곳에서도 연등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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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는 여느 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보통 절은 절간이 사방에 야트막하게 지어져 있어서
아늑하고 사람을 포용하는 듯한 분위기인데,
이곳은 입구에서도 보이듯이 높다랗게 위용을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

밑에서 보면 뒤로 더 높은 누각이 연달아 보여서
문 속에 문이 있고, 그 문 속에 또 문이 있는 신기한 구조다.
누각 뒤에 더 높은 누각, 그 누각 뒤에 또 더 높은 누각,
그리고 그 뒤로는 위용을 자랑하는 절경의 산봉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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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에서 바라본 맞은편 모습.
눈이 가득 덮힌 듯한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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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칠한 듯 색상이 현란한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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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이라고 써 있는 듯..(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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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을 바라보면서 얼마 전 미국사에서 읽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프랑스에 주문 제작해서 종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그걸 자유의 종이라고 부른다.)
그 종은 몇 번 치자마자 종에 금이 가고,
다시 보수를 했음에도 결국 일부가 깨져 버렸다고 한다.
몇 백 년의 세월 동안 타종을 하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우리나라 종을 보면서
종이란 원래 다 그렇게 튼튼한 것인 줄만 알았던 나.
새삼 우리나라 종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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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이라면서 후배가 찍으라고 성화였던 꽃.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다능..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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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통 절의 건물들보다 화려하고 위용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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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가득 메운 연등이 단청 무늬와 어우러져 화려함의 극치를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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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층 구조인데, 다리를 놔서 앞 건물이랑 연결이 되어 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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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간 선배랑 극락전에 들어가 절을 하고 나왔다.

아, 그런데 불암산의 절에서 어떤 아줌마한테
정식으로 절하는 법에 대해 강의를 듣고 난 뒤론,
절하는 게 왜 일케 힘든지 하기가 더 겁나는 거다.
절하면서도 어색어색, 식은땀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
도저히 정신을 모을 수가 없었다능......ㅠ.ㅠ

나오는데, 선배가 물었다.
"근데 왜 하필 극락전에서 절을 하냐?"
"아, 우리 토끼~"
선배가 비웃을까 싶었는데,
"아~" 하더니 아무 말 안한다.

절을 나오는 발걸음 뒤로
녹음테이프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강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욕심을 버리라....는 거다.
내가 얼마나 많은 욕심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스스로도 잘 안다.
"중이나 될까?" 했더니
"넌 못해." 한다.
"왜?" 했더니
"거기도 권력 다툼이 치열하거든." 한다.
하아~~~~~~~~~ ㅠ.ㅠ



3. 청평사를 내려오며


노구를 이끌고 돌아다니니 내려오는 길은 터덜터덜.....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의 두배는 걸린 듯.
심지어 84살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
"너무너무 힘들고 지쳐 보인다."고 걱정을.... ㅠ.ㅠ

본래는 춘천 명동으로 가서 춘천닭갈비를 먹기로 했으나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음식점에서 그냥 산채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엄청난 호객 행위를 뚫고 우리가 택한 곳은
올라갈 때 물을 샀던 곳.
결국 물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밥까지 사먹다니 이게 무슨 논리인지.....
하지만 후배는 꼭 그래야 한다고 박박 우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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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온 반찬과 동동주....ㅋㅋ
저 늘어진 선배의 팔 좀 보라지.
사진 찍는다고 해도 비켜줄 생각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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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주 무지 좋아하는데,
요즘 술을 마시면 소화가 잘 안되거나 체하기 때문에
밥 먹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딱 두 잔 마셨다.
나머지를 두 여인 둘이 다 푸더니 취했다고 난리.... (나참, 술도 세센 여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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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산채비빔밥.
사실 산채보다 열무보리비빔밥이 더 좋은데 뭐 어쩔 수 없지.
밥은 조밥을 주어서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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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일미였던 게 바로 이 감자전.
뭐랄까.....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감자전 중에서 제일제일 맛있었다. >0<b
감자 속에 양파도 넣고 고추도 넣고 한 듯한데,
믹서에 간 게 아니라 손으로 간 거라 쫀득쫀득하면서
야채랑 어우러져 게눈 감추듯이 다 먹어치웠다.

* * *

그렇게 청평사를 떠나서
춘천으로 다시 돌아와 시내를 어술렁거리다 돌아왔다.
올 때엔 버스를 타고 왔다.
알고보니 버스가 있었던 거다. (부르르....)

참, 계획없는 여인들이지....
기차표를 끊고 남는 시간엔 명동서 춘천닭갈비를 먹어보겠다고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갔는데
왜 백화점에 들어가느냐고요.....
결국 서울과 다를 것도 없는 백화점을 보는 데 시간을 몽땅 허비해서
부랴부랴 식품매장에서 주먹김밥이랑 케밥 같은 걸 사가지고
허둥지둥 택시 타고 역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택시비가 버스비보다 더 덜 나옴..이런 젠장@@ 왜 힘들게 버스를 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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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먹은 주먹김밥.
그런데 ...
아...... 이게 또 눈물나게 맛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먹어본 주먹김밥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저 다양한 야채들과 속에 살짝살짝 박힌 참치살들까지....
윽, 몇 개 더 사올걸~~~~

아무튼 참으로 무질서하고 무계획한 여행이었다. -_-;;
멤버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지......
선배나 후배나 계획 짜거나 사전조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니깐.
즉흥적이고 기분파에 귀차니즘의 대가들....
근데...
저번에 서삼릉을 갔다와서 그런지 나까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는 거.

뭐 그래도 바깥공기 한번 잘 쏘였다.
이런 여행이든, 저런 여행이든
결국은 즐겁게 하고 왔으면 최고지......ㅎㅎㅎㅎ

[뱀발] 아, 포스팅이 두려워서 여행 못 가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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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 서삼릉을 나와서

3. 경마 교육원으로 가다


서삼릉을 나와서 이날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경마 교육원으로 갔다.
사실 아니 들를 수가 없는게
서삼릉 입구 바로 옆에 경마 교육원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목장에 나와서 운동하는 말도 볼 수 있다길래
두근두근 기대하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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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교육원 입구의 현판.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동물들의 신세가 다 그렇지만,
경마용 말들의 신세 역시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나으려나???
더이상 경마에 적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까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종마로 대접받으면 운이 좋은 거고,
아니면 촬영현장에서 뛰어야 하겠지. (이때 많은 말들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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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들어서면 쭉 이어진 산책로가 반긴다.
삼삼오오 정답게 걸어가는 아주머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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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걷다보니 좌우로 드넓은 목장들이 펼쳐졌다.
와웅~
제주도 목장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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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가까이....
하지만 어디에도 말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

어릴 때부터 기르기를 소망했던 동물이 둘인데,
그중 하난 고양이였고, 또 하난 말이었다. ^^;
말은 관능적이고 아름답고,
역동적이고,
그리고... 뭣보다 자유롭다.
아마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본능을 이해하는 사람은
말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과 영혼을 교감할 수 있다면.....(흠..또 옆길)

산책로 밑으로 나무 아래 벤치들이 늘어서 있었다.
더이상 볼 것이 없으니
피곤한 다리도 쉴 겸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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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뒤로 보이는 철쭉꽃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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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올려다보니
연둣빛 나뭇잎이 우거져 눈이 시원했다.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고
평소에 원하던 휴식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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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쭉 뻗어 있는 철책.
날이 제법 어두워지고 있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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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장 밖으로 나오니
건너편에 보성 녹차밭이 연상될 만큼 싱그런 초지가 쫘악 펼쳐져 있었다.
눈이 시원지는 그 빛깔.
탄성을 질러가며 과연 이 색깔이 제대로 나올까 의심하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실제에 훨씬 못 미친다.
특히 화면 반경이 너무 좁아서
눈으로 보는 탁 트인 느낌이 전달되질 않는 듯)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왔다.
오던 길을 다시 걸을 엄두는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삼송역으로 갔다.



4. 추억을 찾아서


오는 길에 친구가 모교가 보고 싶다고 했다.
아침에 버스에서 보니 모교 건물이 안 보이더라며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설마...." 했다.

서울 중앙에 있던 오래된 학교들이 그렇듯이
우리 학교도 예전에 부지를 팔고 도심 밖으로 옮겨갔다.
다행히 본관 건물은 일제시대 때 지어진 건물이라
나라에서 보존건물로 지정해서 예전에도 본관 건물만은 분명 본 적이 있었다.

      * * *

안국동에 위치했던 그 자리.
3호선 안국동 역 주위의 풍경은 전보다 번잡해지고 매연 냄새가 진동하긴 했긴만
오래된 그 좁은 도로가 주는 낯익은 느낌은 그대로였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헌법 재판소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담장에서 보면 바로 보이던 그 고풍스런 벽돌 건물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더 뒤쪽인가? 아니야, 바로 길에서 보였어."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
"들여보내 줄까?"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정문에 들어서니 관리실 문이 열리며 경비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숨길 게 뭐 있으랴.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경비가 말한다.
"에이, 건물 다 없어졌어요. 천천히 한번 둘러보세요."

이럴 수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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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뒤로 돌아드는 순간, 눈에 들어온 나무.
바로 백송이다.
이 나무의 가치에 대해서는
학생 시절 정말이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었다.
백송이란 것 자체가 귀하기도 하지만,
김종서 대감 댁 뜰에 있던 나무라는 이력이 덧붙어서
이 나무는 학교의 상징이었다.

다른 나무였다면 다 베어졌을 텐데 천연기념물인 덕에 유일하게 남아 있구나..했다.
당시보다 주위를 그럴싸하게 가꿔놓아서
위용을 자랑하기엔 더 좋다.
그땐 철책 하나 둘러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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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을 지나 건물 뒤의 소롯길로 접어드니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은 등나무 휴식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거....... 이거 운동장 가에 있던 스탠드 아냐?"
"그런가?" 반신반의하는 친구.
"맞아. 소운동장 가에 있던 스탠드.
백송 바로 옆쪽으로 있었잖아."
"그런 것 같다. 등나무 스탠드였는데..."

체육대회 때 앉아서 응원을 하곤 했던 등나무 스탠드가
살짝 개조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 반가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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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더욱 반갑고 그리운 이유는
고3때 야자를 하다가 몰래 빠져나와서
친구와 학창시절의 고민과 개똥철학을 주고받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친구가 바로 이날 함께한 친구다. ^^)

꿈도 많고, 웃음도 많던 때였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는 걸 사실은 알고 있었다.
또 지난 1년 동안 함께 즐거워하며 고3을 맞았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밤이었기 때문에 진지해졌던 것 같다.
호젓한 스탠드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살랑살랑 밤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을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소녀들은 어른이 되어갔고,
마음속에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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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추억을 떠올리다가 발길을 돌리니
이렇게 댕강댕강 잘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이 나무 역시
학교 교정의 한편을 말없이 지키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백송처럼 주목받지 못한 탓에 기억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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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찍었다.
호젓하니 길은 예쁘지만,
이건 학교가 아니다.

장난꾸러기 S가 감 따러 올라갔다가 선생들한테 혼나곤 했던 감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도 그 비명을 듣지 못한 채 베어졌겠지.
방과 후 N을 기다리던 운동장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또 어디로 갔을까.

실내화 바람으로 길 건너 문방구에 만두 먹으러 갔다가
교장이 소리지르면서 달려오는 바람에
골목으로 튀어 현대 본사까지 돌아왔던 일,
실내화를 교실에 두고 통학했기 때문에(물론 금지되어 있었음)
신발 바람으로 교실로 들어가다가 교무실서 나오던 선생한테 딱 걸려서
출석부로 얻어맞을 뻔했던 일,
잘생긴 불어 선생 보겠다고 서예실 청소하러 오갈 때마다 교실문 창을 기웃거리던 일... ^^
(남학생들은 많은 여학생들이 귀엽고 여성스러울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사춘기 여학생만큼 말망아지들도 또 없다.
아마 여형제가 있는 남자들이라면 잘 알겠지.. 훗훗)

모든 건 다 내머릿속에만 남아 있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는 고등학교 시절에 순수한 꿈과 일탈의 즐거움이 가득했더랬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그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만큼 보수적인 분위기의 학교였는데.

언제 더 많은 것들이 잊혀지기 전에
이런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죄다 끄집어내고 싶다.

    * * *

서삼릉에서 경마교육원을 거쳐 안국동의 헌법재판소까지...
참으로 기나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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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 서삼릉에서

2. 서삼릉에서


이번 중국 유학생들의 난동 사건이며,
광우병 이야기며, 미국의 역사까지 들먹이며 한참 열을 내다보니
어느덧 도중에 네번째 이정표인 허브랜드를 지나고
마침내 서삼릉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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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이란 서쪽에 있는 3개의 능이란 뜻이란다.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개의 능이란 뜻이고.
참으로 작명 한번 간단하네.. ^^
덕분에 외우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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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중종의 아들이자 문정왕후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인종의 능인 효릉,
강화도령으로 유명한 철종의 능인 예릉의 3릉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의 맏아들 의손세손의 묘(의령원),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현세자의 묘(소경원),
정조의 맏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묘(효창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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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아늑한 숲길이 우리를 반긴다.

입장료가 천원이면 비싸지 않다.
일본을 돌아보고 오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입장료를 더 올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서비스 개선을 이유로 늘 올려받고도 달라질 것 없는 우리 사회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돈이 부족해서 관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애시당초 제대로 된 관리를 못하는 체계와
그 이전에 유적지를 가꾸고 사랑하는 마음이 문제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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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득 달려서 보니 솔방울이다!!

솔방울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동시가 생각났다.

        다람 다람 다람쥐
        알밤 줍는 다람쥐
        보름 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

        알밤인가 하고
        솔방울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김소월 못지않게 가락 살리기로 유명한 박목월의 동시...
가락도 가락이지만
저 생생하게 떠오르는 달밤의 장면이라니~!!
달빛에 비쳐가며 알밤을 줍는 다람쥐의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귀엽~~ >0<
(또 샜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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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의 곁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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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효창원과 의령원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나왔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이라 하고,
왕세자나 왕세자비, 세손 내외, 왕의 생모나 친아버지이면서
후궁이거나 왕위에 오르지 못었던 이들의 무덤은 '원'이라고 한단다.
그 외의 왕자, 공주, 옹주나 일반인의 무덤은 '묘'라고 하고....
이런 것도 처음 알았으니 참으로 무식의 소치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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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과 의령원의 전경.
건물 뒤로 두 개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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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당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와
사도세자의 제1세자인 의소세손의 위패가 모셔져 있겠지만,
아이 때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나라 풍습상
세자나 세손이라도 제사는 지내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왕위를 이을 세자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는 드라마 <이산 정조>.
정조가 사랑하는 여인으로 나오는 송연이가 바로 의빈 성씨로
그녀가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문효세자이다.
하지만 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첫 아들인 의소세손.
이 역시 세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니 이 묘들은 어리디 어린 왕자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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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옆에 세워져 있는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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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을 지나면서 무덤을 자세히 보러 사초지를 밟고 올라갔다.

봉분(볼록하게  올린 무덤의 흙) 주위에 풀이 잔뜩 깔린 잔디 언덕을 사초지라고 하는데,
원래는 관람객이 사초지를 밟으면 안 된다고 한다.
당시엔 몰랐거니와
별도로 울타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허용하고 있는 듯.

아이들의 무덤이라고 밟는 것을 허용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철종의 무덤인 예릉과 장경황후의 무덤인 희릉은
사초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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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자리잡은 효창원.
뒤에 의소세손의 무덤인 의령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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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 자리잡은 의령원.
세손의 무덤이라 세자의 무덤과 차이가 있는지 더 간소하다.
봉분도 더 낮고 혼유석(묘 앞의 네모 반듯한 돌.. 혼이 노니는 자리라고 한다.)도 차이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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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야 눈에 들어오는 묘비의 모양.
왕과 왕비의 비석에는 집이 있다.
이걸 비각이라고 하는데,
아기 세손과 세자의 무덤에는 비각이 없다.

그런데 그 앞의 저 여의봉 같은 기둥은 무얼까??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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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주위의 석상들.
엉덩이를 보이는 이 석상은 말일까? 꼬리를 보니 말 같고,
저쪽은 호랑이인가?
찾아보니 호랑이, 양, 말 같은 동물들을 깎아 세워서 능을 수호하게 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저 위에 올라가서 사진 찍고 놀았던 기억에 부끄... -///-

그런데 저렇게 인물상이 세워져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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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세워져 있네.. 훗훗
양이 무슨 힘이 있을까마는 12지신 중의 하나인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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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돌려 철종과 왕비인 철인왕후가 묻혀 있는 예릉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사초지 주위에 울타리가 쳐 있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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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릉에 대한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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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운좋게 우리나라 역사와 건축에 해박한 할아버지를 만나
여러가지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저 정자각 지붕의 양식이 맞배지붕이란다.
*  맞배지붕 :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정확하게 맞배지붕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는데,
역시 건축에 대한 이해는 잘 못 하겠다.

능 앞의 제사 지내는 저 건물을 정자각이라고 부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우물 정자처럼 생겼다고 부르는 이름인데,
건물을 옆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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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석을 보관하고 있는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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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롭게 쓰러져 있는 홍살문.
이건 왜 이렇게 삐꾸인가..했는데 넘어지려고 하는 걸 뒤의 나무가 빋치고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이,
저 홍살문은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어서 일반인은 저리로 드나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능의 입구를 표시하는 동시에
잡귀를 쫓는 구실을 한단다.
홍살문이 저래서야 잡귀는 이미 수시로 드나들겠다 싶었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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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정자각의 모습.
이렇게 옆에서 봐도 앞에서 본 거랑 똑같이 생겼다.
길게 정면 지붕이 나왔으니 위에서 보면 우물정 자처럼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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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밑으로 드리운 저 둥근 나무 장식이 예쁘고 특색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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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과 철인왕후의 봉분이 사초지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석상만  보이는 것이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의 능인가?
왕은 왼쪽, 왕비는 오른쪽에 묻는다는데
그게 능을 쳐다보는 방향에서인지 헷갈린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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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보여....;;;
줌인해서 찍었더니 흐릿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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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
참도에 대해서는 아래 희릉 사진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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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간 곳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계비였던 장경왕후가 묻힌 희릉.
희릉의 정자각으로 이어진 참도를 찍었다.

참도는 아무나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왼쪽으로 보이는 넓은 길은 '신도'라 하여 귀신이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의 좁은 길은 '어도'라 하니 제사 지내러 온 임금이 다니는 길이었던 듯하다.

신도는 신로, 어도는 인로라고도 부른다는데,
굉장히 경건한 길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함부로 걸어다니면 안 된단다.
능을 지키고 제사를 주관하는 능참봉조차 풀밭으로 다녀야 한다고 한다.

저 길을 가로지를 때에도 목례를 하고 가로지르는 것이 예의.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전통 예절을 참 홀대하고 살았다.
경건한 마음가짐이란 게 스스로를 자만하지 않게 하니 해가 될 건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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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의 아름다운 단청.
새로 칠한 듯 보이지 않아서 특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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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옆에는 이렇게 두 개의 계단이 있는데,
홍살문에서 이어진 참도의 두 길 중에서
신도는 난간 장식이 있는 왼쪽 계단으로,
어도는 난간 장식이 없는 오른쪽 계단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왼쪽 계단은 신계(神階), 오른쪽 계단은 (東階)라고 부르는데,
신계는 말 그대로 선왕의 영혼, 즉 귀신이 오르는 계단이고,
동계는 제사 지내는 임금이 오르는 계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대편에는 신계가 없이 임금이 내려오는 계단만 있었다.
찾아보니 이를 서계(西階)라고 하는데,
이는 선왕의 영혼이 다시 내려올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제사를 올리기 전에는 동쪽으로 들어가서
제사를 마치면 서쪽으로 나오는 것이 예법이라고 한다.
이는 사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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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릉 정자각 옆의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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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안에는 비석과 비문을 해석한 안내판이 있었다.

이 비문을 보면서 문득 왜 장경왕후는 중종과 같이 묻히지 못하고
외롭게 혼자 묻혀 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됐다.

내가 "아마 중종은 문정왕후랑 같이 묻혀 있나 보지." 했더니
친구 왈, "아냐, 문정왕후도 따로 묻혀 있어."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수수께끼 같은 추론이 시작됐다.
친구는 중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랑했던 부인 신씨랑 묻히기를 소원했나 보다고 했다.
신씨는 왕비도 되지 못했으니 결코 왕이랑 같이 묻힐 리 없다고 반박했다.
친구는 문정왕후가 너무 못돼서 남편조차도 꼴보기 싫으니 다 따로 묻어 달라고 했나 보다..고 했다.
ㅋㅋㅋㅋ..
우린 막 웃으며 나중에 사연을 찾아보자고 했다.(결국 답을 모른 채..ㅎㅎ;;)

찾아보니, 역시 문정왕후의 입김 때문이었다.
본래 중종이 장경왕후와 함께 희릉에 묻혀 있었는데,
문정왕후가 자기가 다니던 봉은사 옆의 정릉으로 중종의 능을 이장하고
그 옆에 자기의 묘자리를 봐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릉에 물난리가 자주 나서 재실에 물이 자주 들어가자
결국 문정왕후는 현재의 태릉에 묻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글에서는,
"살아생전 부인을 셋씩이나 두고서도 죽어서는 하나도 곁에 두지 못한 중종"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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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삼릉의 곳곳을 구경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고 고즈넉해서
능이란 곳이 참 좋은 곳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어딜 가든 사람이 북적이고, 음식점이 들끓어서
운치라고는 조금도 맛볼 수가 없는데,
죽은 이가 묻힌 곳인데도 능은 한적하고 따사롭고 마음이 편해지니 신기한 일이다.
사긴,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최고의 기운을 가진 명당 자리에 능이 서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죽은 이뿐 아니라,
산 사람에게도 마음 편한 곳인지도 모른다.
대학 다닐 때에도 건립자 무덤이 가장 좋은 휴식 장소였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

덕분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참고로, 서삼릉에는 비공개의 묘가 몇 개 있다.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과 그의 비 인성왕후의 능,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가 묻힌 소경원,
그리고 능은 아니지만 이곳에 조선 왕실의 왕자와 공주의 태를 모아둔 태실이 있다고 한다.

살아생전, 또는 사후에 후손이 몰락한 이들의 능은 훼손이 심해서 차마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문정왕후로 왕가가 이어지면서 인종의 능은 방치되어 버린 게 분명하다.
한때 임금이었으나 쫓겨나 지위를 잃은 광해군이나 연산군의 능은 더하다.
공동묘지 같은 데 안치되어 초라한 봉분 앞에 비석 하나 딸랑 서 있으니
위세를 부리는 정재계 실력자들의 조상 묘가 훨훨 그럴싸하다.
반대로 살아생전에 비참한 말로를 겪었더라도
아들이 왕위를 이은 경우에는 다시 추존을 하기 때문에 왕릉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정조에 의해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능이 그렇다.
이런 걸 보면 무덤은 역시 산 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그렇게 서삼릉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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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 서삼릉 가는 길

사실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기 좀 민망하다.
12시에 친구와 종로 3가에서 만나 30분도 안 돼서 내린 것 같으니깐. ^^;;
그래도 딱히 분류가 애매하니 그냥 여행이라고 하자.
문화재 탐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소풍이라고 이름 붙이긴 좀 그렇잖아. ㅎㅎㅎ;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친구가 역사책 읽기에 몰두하면서 시작한
서울 근교의 능 탐방에 급동참해서 갔다온 곳이 서삼릉.
삼송역에서 바로 마을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걸어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3호선 원당 역에서 내렸다.
그렇게 하면 대강 3시간 정도 걷는 코스인데
경치가 어쩌구, 허브랜드가 어쩌구..하면서 나를 꼬드긴 친구...ㅋㅋ

그리하여 능까지 걸어가는 길이
또 하나의 여정이 되어버렸다.
사실 경치 좋은 길을 걸어가는 건 추억에 남아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데.. ;;

(사진이 너무 많아서 글을 나눴다.)


           

1. 서삼릉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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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내리고 나서 걷기 시작한 길.
길이 사진에서 별로 고려되지 않은 건
길보다 나란히 저 두 그루의 나무가 마음에 들어서임.

날씨는 정말 화창 그 자체였다.
애시당초 반팔에 홑잠바를 입고 걸었지만
햇살이 따끈해서 걸으니 제법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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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예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러운 나무 간판의 색감이랑 예븐 글씨가 맘에 든다.
빨간 글씨의 간판이었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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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핀 예븐 꼿들과 나무가 연신 유혹~
저렇게 별처럼 작은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 있는 걸 보면
앙증맞고 사랑스러워서 아니 찍을 수가 없다.
"너는 누구니???"
꽃은 아이에게 대답이 없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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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첫 이정표가 된 곳.
배다리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무슨 박물관인가 했더니 술 박물관이란다.
삿포로의 맥주 박물관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다.
그냥 사진만 찍고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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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탄성을 지른 꽃나무.
사진 찍으려고 다가가니
몰랐는데, 멋진 턱시도 고양이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인상을 구기며 어슬렁어슬렁 뒤의 창고로 가버렸다.
그냥 같이 한 방 찍혀주지..... 모델료가 없다는 걸 안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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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줌인하여 찍어봤다.
철쭉 종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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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등을 하나하나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꽃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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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꽃다발을 쏟아놓은 듯 흐드러지는 보랏빛 꽃들도 무더기로 피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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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새순이 파릇파릇 가지마다 물오르는 나무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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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으니 이런 멋진 길이 우리를 반겼다.
5월... 신록... 그런 구태의연한 단어들 말고 떠오르는 말이 없을까?
아직 어린 연둣빛을 간직한 싱그런 숲길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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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빠져나오니 두 번째 이정표인 목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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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어려 보이는 송아지들이 햇볕을 쬐러 나와 있었다.
그중 한 녀석이 자꾸만 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정말 아이였더라면 좋아했을 텐데
이제는 소의 눈이 슬퍼서 쳐다보기가 쉽지 않다.
이녀석들이 최대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 기원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산업화가 되면서 생명도 공산품과 같이 취급되는 세상에서
이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말 채식주의뿐일까?
달걀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는데 ..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달걀을 찾고 고기를 먹는 나.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혔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조차 간단히 해내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고,
석가모니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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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의 죄를 알면서도 밥집을 보는 순간,
어느새 들뜨고 기대하고 있는 나의 이중적 자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