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들이 지고 있다...

Posted 2010. 11. 29. 00:35, Filed under: 디 마이나
주초마다 찬바람이 불면서 시베리아의 한파가 몰아친다 싶더니
드디어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록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곱던 잎들조차 파스스 마른 잎으로 거리를 뒤덮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겨울을 미리 드러내고 있다.

운치라면 운치 있는 길,
가슴 후비는 쓸쓸한 거리라면 그런 거리..를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린내...라고들 말하는 그 냄새.
누군가 쌌을 리 없는 그 냄새의 진원지는 역시 은행나무들이다.
뒤늦게 떨어진 은행들이 보도를 뒹굴고, 때론 구둣발에 밟히고 때론 그대로 물러 가면서
시멘트 바닥에서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그순간 갑자기 몇 주 전엔가 읽은 영화 잡지 <무비위크>에서 편집장이 썼던 글이 생각났다.
G20 같은 행사로 치장하지 말고
거리에 진동하는 이 냄새나는 것들을 어떻게 해달라는 투의, 현 정부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글이었다.
원래 편집장이 되기 전, 기자 시절부터 그 사람이 쓴 글을 좋아했지만
그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냄새나는 것들.
정부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는 거야 그 사람 마음이니 상관없지만
어째서 그 화살이 아무 죄없는 은행에게 돌아가야 했는지?
마치 그건 * 누는 인간더러 왜 너는 그런 고약한 냄새가 나느냐고 질책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차라리 조금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한껏 성과를 뽐내는 정부를 비꼬아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가을에 단지 인간의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피운다는 이유로 은행나무를 매도해야 했을까.
이 지구상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거의 없으니
은행나무는 인간을 불쾌하게 한다는 인간의 잣대만으로 모조리 없어져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점잖고 너그러운 스님들 사는 절 옆에만 심어야 한다는 건지.

좋아했던 이의 글이라
그도 역시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씁쓸했다.

가만히 앉아 보도 블럭 위를 뒹굴고 있는 은행들을 바라보았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힌 은행들도 불쌍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성한 채 시멘트 위 한자리를 겨우 차지한 녀석들도 불쌍하긴 매한가지다.
은행에게도 산중이 더 좋았을 것이다.
싹조차 튀우지 못한 채 차가운 시멘트에서 썩어가야 할 운명으로 떨어졌으니.
은행나무도 이런 공해에 찌든 가로수로 서 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열심히 열악한 환경에서 군소리 없이 계절에 맞춰 살아가는 은행나무들이 가엾다.

어느 순간, 또 누가 가로수를 바꾸자고 할까 두렵다.
그 많은 은행나무들은 그럼 어떻게 되는데?
싹둑싹둑 소리 없이 베어지고 말 은행나무.
차라리 용문사 깊은 산중에나 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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