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제정신이 아닌 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정신이라는 게 어디에 붙어 있기나 한가 싶다.
느긋하게 차 한잔 즐겨본 기억도 까마득한 중에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라도
홍차 한 잔을 마시리라 결심했다.

상미기한이 넘은 차들이 가득가득한 탓에
어느 차부터 마셔야 할지 찾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돌아다니는 시음티 봉지 중에 하나를 꺼내 들었더니 '다질리언의 얼그레이'.
어무이는 내가 가진 대부분의 차가 홍차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다.
홍차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다양한 차가 만들어지는지 알 리 만무하니까.;;;;



4g이나 들어있다고 해서 대략 난감...
보통 2.5그램에서 3그램 정도 마시는데 이걸 나눠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다 붓고 마시기로 했다.
얼그레이를 마신 기억이 참으로 까마득하다.




요즘 다시 꺼내 쓰는 하리오 유리 티팟.
바쁘다 보니 스트레이너 쓰고 할 시간이 없어서 거름망 일체형인 티팟을 쓰고 있다.
쓸수록 기특하고 귀여운 녀석.
4g이나 되는 찻잎에 고민고민하다가 물을 350밀리는 넘게 부은 듯하다.
이때부터 이상하게 카메라 초점이 안 맞아서 사진이 부옇게 나오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너무 안 써서 내 말을 안 듣는 걸까?



그 사이에 덴마크 쿠키를 개봉했다.
여름에 샀는데, 금세 습기로 눅눅해져서 가을까지 기다리기로 했던 쿠키다.



열어보니 반가운 쿠키들이 쪼로록 들어 있다.
버터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이 쿠키들은 홍차랑 먹으면 아주 맛있어서
한때 내 주요 티푸드였던 것들.
여름에는 밤사이에 일하면서 다 먹어 치웠다. -_-;;;



여름엔가... 수정이 생일에 만나던 날,
부암동 고갯길의 쇼트케이크에 들어가서 델꼬 온 플란넬 머그를 꺼냈다.
질리지 않는 이 보라색 머그는 처음 볼 때보다 자꾸 쓸수록 더 맘에 든다.
스튜디오엠의 에피스 머그보다 호리호리하고 더 여성스러운 느낌?



머그는 수색이 진해서 홍차 수색 감상엔 안 좋다.
그래도 안 찍어두면 섭섭한 것이, 이제는 다 버릇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찍고 나서 보니 뭐가 둥둥 떠다녔다.
뭐 그래봤자 차에서 나온 거려니... 하고 무시. (원래 개념 없는 인간인지라.)



카렐 로고가 예쁘게 돋보인다.
다행인 것이, 그동안 홍차를 너무 안 마셔서
깜박 잊고 티팟 데우는 것도 까먹고 물을 들이부었는데도
홍차가 그런대로 제맛을 내주었다는 것이다.
사진이 하도 흐려서 이래 찍고 저래 찍고 하는 사이에 족히 5분은 지났음에도
크게 떫거나 쓰지 않아서 티푸드와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베르가못 향이 알싸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게 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
그런데 다질리언의 얼그레이는 안에 레몬그라스가 배합되어서인지
유난히 상쾌한 느낌이 강했다.
조금 더 제정신을 차리고 마셔보고 싶은 게 사실인데
이게 시음티로 받은 거라 더는 가진 게 없다. 아쉽............;;;;
그래도 할 수 없다.
있는 차나 다 마시자..가 되어버린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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