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쭈물딱 쭈물닥 하다 보니
2009년의 감회를 쓰려던 게 그만 2010년이 되어버렸다.
곧장 써야 했던 감회가 그 바람에 순식간에 과거 시제가 되어버렸네..ㅜ.ㅜ

TV에서는 정말 관심없는 연예인들의 무슨 대상 잔치만 흘러나오고
재미없는 TV에 지친 어무이와 아부지는
보다보다 결국 TV를 끈 채
코를 골고 주무셨다.

오랜만에 저녁에 시간이 생겨
떡볶이랑 오뎅국을 끓여 먹고서
혼자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고만 있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동생과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친구 만난다고 동생이 나가고 나니 
2009년의 마지막 날이 평소보다 더 썰렁하고 허허롭다.

떠들썩한 TV의 소리와 대조적으로 마음이 급격히 울적해져서
뭔가 나를 위한 조촐한 티타임이나 가져볼까 했더니
이미 12시가 다가오는 시각이라 선뜻 홍차를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수뎅이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종로에 나갔다가
밤새 온 카페를 전전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희부윰하게 새벽이 밝아오던 그 카페에서
우리는 따끈한 코코아를 주문해서 마시곤 그대로 앉은 채 잠이 들었더랬다.
이후로 그날 마신 코코아의 맛만큼 기억에 남는 게 없다.



혼자 부엌에 나가 뒤적뒤적 코코아 믹스를 꺼냈다.
'그날처럼 따끈하게 맛있는 코코아를 먹어야지....' 하면서
'이 코코아 한잔이 2009년 송년의 축배야...' 하면서



그랬는데....
이렇게 채 녹지 않은 덩어리도 보이고
2분이나 돌렸는데도
무척 미지근한 맛없는 코코아가 되어버렸다.



걸죽하니 사진으로 보면 그럴싸해보이지만
그날 서른을 맞이하면서 마셨던 코코아의 맛과는 천지차이다.
차가운 겨울 새벽의 한기 속에 마셨기 때문일까?

코코아 한잔과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의 추억.
그렇게 몸을 녹이고 피곤에 겨워 잠이 들었는데 
촉촉한 새벽공기처럼 내 머릿속에 파고들던 포리너의 'I wanna know what love is'....
결코 차갑지 않은 보컬의 음색이 
지금도 내 기억속엔 서늘한 추억으로 남는 것도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때에 비하니
올해 내 송년의 밤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롭기까지 하다.
송년.. 뭐 있나?
신년.. 그게 뭐 별다른가?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바로 한 시간 전에 2009년이었으니
2010년이라고 해도
단순한 숫자의 건너뜀에 불과하다.
시간도 점처럼 입자가 있어서 한 칸 한 칸 건너뛰며 표시되는 건 아닐 텐데~
무수히 쪼개고 쪼개지는 시간 속에서
무수히 포개지고 포개지는 시간 속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두려워진다.
내 인생의 좌표에서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취하자, 기뻐하라, 축복하라!!
마음껏 외칠 수 없는 나는 확실히 그때에 비해 죽음에 한걸음 다가섰나 보다.

그래도 소망만은 더욱 간절해진다.
부디 올 한해가 조금 더 여유롭고 행복했으면.....
찌룽이가 계속 건강하고 오래오래 평생토록 함께했으면.....
마음에 여유를 담고 살다가 
죽음을 기뻐하며 죽고 싶다. 
자, 이제 됐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눈을 감을 수 있기를.

그러려면 또 올 한해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겠지.
그때까지 
열심히
느끼고
배우고
탐독하며
생각하며
체득하며
후회없이
살자...

복 같은 건 이미 믿지 않으니
그저 이왕이면 조금만 운이 더 좋기만 바라자.
불운이 있다면 나를 비껴가기만을 바라자.
이게 정말 소박한 나의 올 한해 바람~ 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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