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나 되는 연휴를 그냥 집에서 썩기엔 아깝다 싶어서
수뎅이에게 수원성 답사를 제안했다.

어째서 사도세자와 정조가 묻힌 융건릉이 수원에 있다고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하루에 두 탕을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가기 전날 인터넷을 뒤져보니
융건릉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하고 있었다. -_-;;
그래서 예정없이 대강대강 해치운 답사길 되시겠다....;;;



부끄럽지만 내 평생 처음으로 발을 디뎌본 수원의 수원역 모습.
알고보면 촌순이라 별로 나댕기질 않다보니
서울의 영등포조차 두어 번 발 디뎌본 사람이 바로 나다.

11시에 종각에서 만나 1호선을 타고 수원역에 내리니 12시 10분경.
융건릉에 먼저 들렀다가 수원성을 보자는 수뎅이의 말에
점심도 수원역의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로 때웠다.
그리고 집에서 보온병에 타가지고 간 딜마의 캐러멜 밀크티와 함께.
수뎅이가 맛있어해서 싸간 보람을 한창 느꼈다. ㅎㅎㅎ

햄버거를 먹고 떠들 때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융건릉에 가는 버스.
인터넷서 찾아간 정보에는 24, 24-1, 46, 46-1의 네 대나 되는 버스가 있건만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나도록 아무 버스도 지나가지 않는 거였다.
시간은 바야흐로 1시를 넘어서고..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_-;;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포기하려는 찰나에 46번이 나타났다..에휴~~
(이때 이미 돌아갈 길이 걱정되더란 말이지...ㅠ.ㅜ)



수원역서 30분 넘게 걸려 도착한 융건릉의 입구.
입장료 1000원을 기꺼이 내고 사뿐히 들어서니
예의 기분좋은 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기분좋은 산책길.



울창한 나무들을 지나서 가다보니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저것은 화장실?? ^^;;



먼저 도착한 곳은 사도세자(장조)와 헌경왕후 홍씨(혜경궁 홍씨)가 묻힌 건릉.
멀리 익숙한 구조의 정자각이 보인다.
이미 서삼릉을 다녀오면서 한 차례 능 답사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빨리 수숸성에 가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사진만 찍음. -_-;;



연휴라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왔다.
능 간다고 하면 대뜸 "능이 다 똑같지 뭐 볼 것 있느냐?"고 하시는 부모님.



모르시는 말씀.
예전에 서약철학 교수님이 그러셨다.
"무덤 옆에서 하룻밤을 새워봤는데
세상에 그처럼 맘 편한 곳이 없더라."
공동묘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밤 새우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양지바른 곳의 무덤가만큼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곳도 없다.
고달픈 한세상을 마치고 양지바른 곳에 누워 쉬고 있을 고인의 넋을 생각하면
나 또한 이처럼 양지바른 곳에서 편안히 쉬고 싶어진달까.



조금 가까이 보고 싶어서 끌어당겨 찍어봤지만
역시나 너무 먼...;;;

본래 사도세자의 묘는 동대문구 휘경동의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가 경기도 화성(당시엔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 했고,
장조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높이게 된 거라 한다.
배봉산이면 바로 뒷산인데.. 그런 사연이 있는 것도 몰랐군. -//-
휘경동이라는 이름도 원래의 묘 이름이었던 휘경릉에서 유래했단다.



융릉의 신도비각.



비각 안의 신도비.
신도비가 뭔가.. 하고 찾아보니
신도, 즉 귀신이 다니는 길에 세우는 비석이란다.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려시대에는 3품 이상,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에 한해서만 세울 수 있었는데,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했었다고 한다.
(그럼 언제부터 다시 세우게 된 거지?)



융릉의 비문을 해설한 글.
건립 연대는 정조 13년(1789년)으로
사도세자의 탄생과 원자 및 세자 책봉 과정과 짧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만.. 1789년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해다.
왕정이 무너지고 인류사가 급변하던 시기의 조선사라....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건릉으로 향했다.
둥글게 판 연못에 연잎이 하늘하늘(?)
잉어도 살고 있다. ^^;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가 묻힌 건릉.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왕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아마 내가 정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읽은 다음부터였던 듯.
정조 암살을 기초로 하룻동안의 일을 써내려갔던 이 소설은
국내 소설에 관심이 없던 나도 무척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잘 보이지 않는 무덤.
어릴 때엔 소풍만 가면 꼭 저 석상에 기어 얼라가 놀고 사진을 찍었었다.... -//-
지금은 아무도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지 않는다.
그만큼 문화적 소양이 높아진 거라 생각한다.
많은 포부를 끝까지 실현하지 못해 아쉬웠을 정조대왕의 안식을 빌면서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무척 많았다.



제사 때 이용하는 계단.
이 역시 왼쪽은 신이 올라가는 계단이라고 했었지.
계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구름 문양(맞나?



건릉의 신도비각과 눈길을 끄는 단청.
빛바랜 듯한 연둣빛이 눈길을 끌었다.



신도비.
이 역시 정조의 생애가 짧게 적혀 있겠지.



이제 한시바삐 수원성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계를 보니 3시가 넘고 있었다.
올 때 그리도 오지 않던 버스가 갈 때인들 제때 올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33번 버스만 열심히 오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46번이나 2번은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을 보니 작게 꾸민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4시가 되자 마음은 이미 절망 상태.
아무래도 수원성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수뎅이 왈
"이럴 줄 알았으면 33번이 범계로 가는가 본데 저것 타고 범계역 가서 수원역 가는 게 빨랐겠다." 하는 거다.
후회할 게 뭐 있나.
지금이라도 46번 포기하고 범계로 가는 게 낫다 싶어 33번을 올라타고 범계로 향했다.



세상에나.
융건릉에서 한 정거장 가니 용주사가 있고
(여기도 승무제를 끝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들 타셨다.
아깝다. 이런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얼마 안 가니 범계역이다.
ㅠ,ㅜ
혹시나 융건릉 가시려는 분들~~
절대 수원역서 가지 말고 범계역에서 33번 타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
범계에서 수원역은 2정거장밖에 안 된다.

어쨌든 생전 처음으로 범계역에도 갔다.
시골스런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역은 도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앞으로 이곳도 몇 년 뒤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을 걸 생각하니 조금 섭섭...
도시인의 이기심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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